[송병형의 딴생각] 서울과 상하이의 N포세대
N포세대란 말이 나올 때마다 항상 떠오르는 곳이 있다. 아시아 제1의 도시인 중국의 상하이다. 몇 해 전 취재차 상하이를 찾았을 때다. 중심가로 가는 길에 빨래가 창가를 뒤덮은 연립주택이 눈에 띄였다. 빨간 기와 지붕을 한 유럽식 주택이었다. 건물과 어울리지 않는 모습 탓인지 유독 기억에 남았다. 하지만 취재 목적과는 무관한 일이라 기억에만 담아 두기로 했다. 그러다 상하이 총영사관 관계자를 만난 자리에서 '재미 삼아' 물어보았다. 상하이에서 몇 해를 보낸 외교관이었다.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재미와는 거리가 먼 이야기였다.
그의 이야기를 간추리자면 이렇다. 상하이의 살인적인 물가에 청년들이 혼자서 방을 월세 낼 엄두를 못낸다. 그래서 청년들 여러 명이 같은 방을 쓰다보니 빨래가 많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렇게 같은 여러 명이 쓴다면 사생활을 포기해야 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돌아오는 대답은 '상하이 청년들이 포기하고 사는 것은 그것만이 아니다'라는 설명이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청년들의 월급에서 월세를 포함해 기본적인 생활비를 빼고 나면 남는 게 없다. 월급이 적어서가 아니라 워낙 물가가 높기 때문이다. 그래서 상하이 청년들은 사생활은 물론이고 인간관계도 포기해야 한다. 남의 경조사를 챙길 돈이 없기 때문이다. 상하이 청년들에게 청첩장을 주고 받는 일은 환영받지 못하는 일이다.
상하이 청년들은 아파서도 안된다.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저축해 놓은 돈이 없기 때문이다. 중국은 올해 10월 18기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5차 전체회의(18기 5중전회)에서 비로소 중병에 대한 전면적인 의료보험 시행을 결정했다. 상하이 방문 당시 중국은 의료보험을 실시하고는 있었지만 유명무실한 상태였다. 그저 젊음 하나에 기대는 수밖에 없다. 암과 같은 중병에 걸리면 속수무책이다.
당시만 해도 우리나라에서는 3포세대니 5포세대니 하는 말이 유행이었다.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하면 3포세대, 여기에 취업과 내집 마련까지 포기하면 5포세대다. 올해 들어서 우리나라에서도 청년들이 인간관계를 포기한다는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7포세대니, 9포세대니 하더니 이제는 셀 수 없을 정도라며 N포세대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다.
그냥 유행만은 아닌 듯하다. 일요일 출근길, 지하철에서 내려 시청역을 빠져 나오다 바닥에 쓰러져 곤히 자고 있는 20대 청년을 보았다. 입성을 봐도, 남자답지 않게 고운 얼굴을 봐도 노숙자는 아니었다. 토요일밤 친구들과 거하게 한 잔 한 뒤 귀가 길에 지하철역에서 잠 든 것으로 보였다. 술 자리 대화의 주제는 취업난이었으리라. 그래도 아직 친구들이 만나 서로의 고민을 털어놓으니 아직 상하이 청년들처럼 인간관계를 완전히 포기한 것은 아닌 듯하다. 그나마 다행이지만 방심해선 안될 일이다. 상하이 청년들이 서울 청년들의 미래가 돼선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