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 고객 뺏기면 은행 수익에 '직격타'
내년 2월 이체범위 확대…전쟁 불가피
은행들, 주거래 고객 우대 서비스 경쟁
계좌이동제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고객 이탈현상'을 확인한 은행들이 바짝 긴장하고 있다./각사 제공
온라인에서 클릭 한번으로 계좌에 연결된 자동이체를 한 번에 바꿀 수 있는 계좌이동제가 전격 시행되면서 은행권이 바짝 긴장하고 있다. 시행 초기 뜨거운 열기는 다소 수그러들었지만 내년 본격적인 2라운드가 예고돼 각 은행들은 주거래 고객에 특화된 서비스를 내놓으며 고객잡기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11일 금융결제원에 따르면 계좌이동제 서비스를 시작한 지난달 30일부터 2영업일 간 계좌이동 사이트인 '페이인포' 접속 건수는 21만3000여건을 나타냈다. 이 가운데 자동이체 변경은 3만4500여 건, 자동이체 해지 건수는 7만여 건이다.
금융당국은 고객 쏠림 현상 등 부작용을 우려해 '페이인포' 접속 건수를 계좌이동제 서비스 시행 첫날과 이튿날에 한해서만 공개하기로 했다. 이후 접속 건수와 계좌 변경, 이동 횟수 등은 추후 논의를 거쳐 공개할 예정이다.
◆희비 갈린 시중은행…내년 2월 재격돌
계좌이동제가 시행된 지 열흘이 지나면서 현재는 하루 계좌 이동 건수가 6000여건으로 줄어드는 등 은행권은 대체로 안정을 찾아가는 분위기다. 하지만 고객 이동을 실제로 확인한 은행들은 긴장을 늦추지 않고 있다.
실제로 계좌이동제 시행 이후 시중은행들의 희비가 갈렸다. 신한은행은 지난달 30일 500여명에 이어 이달 2일 800여명 등 총 1300여명의 고객이 새롭게 가입하며 비교적 선방했다.
우리은행도 이 기간 800여명의 고객이 순유입했다. 이틀간 3000여명이 주거래은행을 우리은행에서 다른 은행으로 옮겼지만 800여명이 새로 가입했다.
같은 기간 KEB하나은행은 500여명의 신규 거래 고객을 확보했다. 기업은행은 계좌이동제 시행 후 1700여명이 다른 은행으로 갈아탔지만 1900여명이 기업은행으로 계좌를 옮겨 200여 명이 순증했다.
반면 KB국민은행과 NH농협은행은 자세한 실적을 공개하지는 않았지만 이탈 고객이 유입 고객보다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계좌이동제는 이동통신·보험·카드 등 3개 업종의 자동납부를 대상으로 한 출금계좌 변경 서비스만 이뤄지고 있다. 내년 2월부터는 은행 창구에서 계좌를 개설하면 기존계좌에 연결된 자동이체(자동송금 포함) 항목을 온·오프라인에서 끌어올 수 있어 본격적인 '고객 대이동'이 전망되고 있다.
◆시중은행, 주거래 우대 상품 선봬
시중은행들은 계좌이동제에 대비, 고객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더 많은 혜택을 추가한 상품을 잇따라 출시하고 있다.
우선 KEB하나은행은 우대금리를 기본으로 제공하면서 최고 1억5000만원까지 신용대출을 해주는 혜택으로 주거래 고객확보에 나섰다. KEB하나은행은 개인사업자에게 수수료 면제 혜택을 주는 '사업자 주거래 우대통장'과 기업 주거래 요건 충족 시 최대 연 0.6% 금리 우대 등을 제공하는 '주거래우대 중소기업대출' 특판상품도 선보였다.
KB국민은행은 우대조건을 낮춰 누구나 주거래고객 혜택을 누릴 수 있는 'KB국민ONE통장' 상품을 판매한다. 입출금이 자유로운 이 통장은 공과금 이체, KB카드 결제실적이 1건만 있어도 전자금융, 현금자동화기기(ATM) 시간외출금 등의 수수료가 면제된다.
신한은행은 신상품 출시보다 기존 상품의 서비스를 개선하는 쪽을 택했다. 신한은행이 지난 7월 출시한 '신한 주거래 우대 패키지'는 기존 직장인 우대통장과 통합된 '주거래 우대통장'과 '주거래 미래설계통장' 등으로 구성돼 있다. 이 상품들은 신한카드 1원이상 결제 또는 공과금 이체가 1건만 있으면 전자금융, ATM 인출, 타행 자동이체 등의 수수료가 무제한으로 면제된다.
지난 3월 시중은행 가운데 가장 먼저 계좌이동제 대비 특화상품을 출시한 우리은행은 '우리웰리치 주거래패키지', '우리웰리치주거래예금', '우리 웰리치 주거래 통신 관리비통장대출' 등으로 고객을 끌어모으고 있다.
IBK기업은행의 'IBK평생한가족통장' 역시 일정조건이 충족되면 각종 수수료 면제와 우대금리 등이 제공된다. SC은행도 신규 자동이체 고객에게 갤럭시 기어 S2, CGV 모바일 영화예매권 등을 증정하는 이벤트를 이달 30일까지 진행하고, NH농협은행은 수수료 면제 혜택 등을 통해 고객 공략에 나섰다.
전문가들은 수수료 면제와 소폭의 금리 혜택 등 비슷한 혜택으로는 고객 유인 효과가 떨어진다고 지적하고 있다.
김우진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은행들이 고객 뺏기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계좌이동제로 증가한 마케팅 비용 이상의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고객을 확보하는 것이 관건"이라며 "너무 공격적인 마케팅을 벌이기보다는 일부 고객을 선별한 '셀렉티브 마케팅'을 통해 투입 비용대비 수익을 올릴 수 있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