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민주화 의지를 드러내는 대표적인 메시지다. 그는 독재정권에 저항하며 수많은 어록을 남겼다. 간결하고 직설적이면서 통괘하기까지한 그의 어록은 역사에 남을 전망이다. 김 전대통령의 주요 어록을 정리해 봤다.
◆민주화를 향한 의지의 발언
▲순교의 언덕, 절두산을 바라보는 이 국회의사당에서 나의 목을 자른 공화당 정권의 폭거는 저 절두산이 준 역사의 의미를 부여할 것이다.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오고야 만다. (1979년 국회의원 제명시)
▲산행 도중에 많은 낙오자도 있었다. 민주화도 이와 같다. 민주화의 길은 그만큼 고행의 길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민주화 산행에 있어서 최종 고지의 200m 전방에 와 있는 셈이다. (1987년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대통령 후보 지명은 축제 속에 이뤄져야 한다. 박종철군 사건으로 온 국민이 우울한 지금, 민정당의 6·10 전당대회에서 하는 대통령 지명대회는 초상집에서 춤을 추는 격이다. (1987년 국회의사당 단식농성 중 인터뷰)
▲선거혁명을 통한 민주화가 내 지론이었으나, 이 정권이 받아들이지 않았다. 어젯밤과 오늘 내내 생각한 끝에 이 정권을 완전히 타도할 것을 결심했다. 나는 박정희 정권을 타도시킨 사람이다. 기필코 전두환 노태우 정권을 타도할 것이다. (1987년 대통령 선거 직후 기자회견)
◆부패척결을 앞세우며
▲신한국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인내와 시간이 필요하다. 눈물과 땀이 필요하다. 고통이 따른다. 우리 다 함께 고통을 분담하자. (1993년 대통령 취임사에서)
▲우리가 먼저 달라져야 한다. 우리가 먼저 깨끗해져야 한다. 우리가 먼저 고통을 기꺼이 감당해야 한다. 나는 대통령인 나 자신이 솔선해야 한다는 각오 아래 오늘 나의 재산을 공개하는 바이다. (1993년 첫 국무회의를 주재하는 자리에서)
▲추석 때 떡값은 물론 찻값이라도 받지 않을 것이다. (1993년 청와대 기자간담회)
▲새 정부에 있어 국가기강 확립의 대도(大道)는 하나도 윗물 맑기요, 둘도 윗물 맑기다.(1993년 국가기강확립 보고회의)
▲우째 이런 일이…. (1993년 최형우 민자당 사무총장 아들의 대입 부정과 관련해)
▲토지와 건물 등 부동산을 갖고 있는 것이 고통이 되도록 하겠다. (1993년 신경제계획 민간위원과의 조찬)
▲이 시간 이후 모든 금융거래는 실명으로만 이루어진다. (1993년 금융실명제에 관한 특별담화문)
▲아직도 골프를 열심히 치십니까. (1993년 경제5단체장 회식)
▲로마제국은 외침이 아니라 내부 부패로 망했다. (1994년 인천 북구청 세무비리 사건에 대한 엄단을 지시하면서)
▲세상의 모든 아버지들과 마찬가지로 저도 아들의 허물은 곧 아비의 허물이라고 여기고 있다. (1997년 차남 현철씨의 한보사태 이권개입 의혹에 대해)
◆대북메시지 등 해외정상과의 대담
▲북한이 무모한 핵개발을 계속하며 서방의 인내를 시험한다면 반드시 자멸의 길을 걸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을 경고한다. (1994년 민주평통 운영위원 접견)
▲보름 후면 남북 정상이 한자리에 모여 민족의 장래를 위해 허심탄회하게 논의키로 했는데 이 소식을 접하면서 아쉽게 생각한다. (1994년 북한 김일성 주석 사망 시)
▲남북한 사이의 체제경쟁은 이미 끝났다. (1994년 8·15 광복절 경축사)
▲이번 기회에 일본의 버르장머리를 고쳐놓겠다. (1995년 장쩌민 중국 국가주석과 정상회담 후 가진 기자회견 중)
▲북한이 국지전을 일으키면 전면전으로 갈 수 있다. (1996년 여야 및 국회 지도자들과의 회담)
◆민생을 걱정하고 용서하는 마음
▲태풍을 기다리는 것은 밤에 도둑이 들기를 기다리는 것 같지만, 태풍이라도 와 비가 내렸으면 한다. (1994년 극심한 가뭄에 대한 심정 토로)
▲국민 여러분의 참담한 심경과 허탈감, 정부에 대한 질책과 비판의 소리를 들으면서 대통령으로서 부덕함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관련 대국민 특별담화)
▲최 의원 나요, 나. 빨리 일어나야지. (1997년 뇌졸중으로 의식 불명인 최형우 의원 병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