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커버그 '52조' 착한 기부 뒤엔 착한 정책이…미국 벤처창업자 경영권 철통 보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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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트로신문 송병형기자] 미국 페이스북의 최고경영자(CEO)인 마크 저커버그가 1일(현지시간) 갓 태어난 딸(Max)에게 재산을 상속하는 대신에 보다 나은 세상을 선물하겠다며 자신이 가진 페이스북 지분의 99%(약 52조 원)을 기부하겠다고 약속했다. 그가 이미 2010년 더기빙플레지(빌 게이츠 등 전 세계 대부호들의 재산 사회환원 약속)에 서명하기는 했지만 사실상 전 재산을 기부한다고 밝히면서 전 세계가 그의 결단에 놀라고 있다.
더 주목할 것은 재산 기부에도 불구하고 페이스북에 대한 그의 장악력이 유지된다는 점이다. 미국은 페이스북 창업자의 경영권 방어를 제도적으로 매우 강력하게 보장하고 있다. 혁신적인 정보기술(IT) 벤처기업이 경영권 위협 없이 사업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이지만 악용 소지가 있다는 지적이 거셌다. 저커버그는 선의의 정책을 악용하지 않고 선의로 답한 셈이다.
저커버그는 4백만 주 가량의 '클래스 A' 페이스북 주식과 4억1900만 주 가량의 '클래스 B' 주식을 현재 가지고 있다. 두 종류의 주식은 의결권에서 차이가 난다. 클래스 A는 한 주당 한 표를 행사하는 보통주이지만, 클래식 B는 10표를 행사할 수 있다. 흔히 초다수의결권주(super voting shares)라 불리는 것으로 미국은 구글과 페이스북과 같은 IT 벤처기업의 경영권을 보호하기 위해 허용하고 있다.
페이스북은 2012년 기업공개(IPO) 이전 주식까지로 클래스 B를 한정했다. 이후 클래스 B의 양이 고정된 반면 클래스 A는 늘어나고 있지만 일반 주주들이 보유한 클래스 A의 비중이 전체의 90%를 초과하지 않는 한 클래스 B를 보유한 페이스북 창업 공신들의 경영권은 보장된다.
특히 페이스북의 회사 정관은 창업자인 저커버그에게 막강한 경영권 방어력을 부여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IPO 당시 저커버그가 보유한 클래스 B는 전체 클래스 B의 28%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클래스 B 내에서 57% 가량의 의결권을 확보할 수 있었다. 그가 과반수 이상의 의결권을 확보할 수 있도록 동료들이 자신들의 클래스 B에 대한 의결권을 그에게 위임했기 때문이다.
회사 정관은 여기에 더해 기업 지배력에 변화를 초래할 거래가 있을 경우 별도로 클래스 B 보유자들의 의결을 거치도록 하고 있다. 저커버그의 동료들이 자신들의 클래스 B 지분을 모두 처분하지 않는 한 저커버그의 지배력은 굳건하다는 이야기다.
또한 저커버그가 주주 자격을 유지하기 위한 1%의 지분만을 남기고 나머지 클래스 B 지분 전부를 처분하더라도 인수자가 초다수의결권을 가지는 것도 아니다. 클래스 B가 처음의 주인을 떠나면 자동적으로 클래스 A로 전환되기 때문이다.
물론 저커버그가 99% 지분 모두를 당장 처분하는 것도 아니다. 저커버그의 기부 약속 직후 페이스북은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제출한 신고서에서 향후 3년간 저커버그가 기부하거나 처분할 주식의 액수는 연간 10억 달러(1조1500억 원) 이하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저커버그가 페이스북의 과반 의결권을 예견 가능한 장래에 유지할 의도를 가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저커버그의 기부는 그의 생전 장기간에 걸쳐 이뤄질 전망이다.
저커버그는 일부 주식을 처분해 마련한 돈을 우선 개인화된 맞춤형 학습, 질병 치료, 사람들 연결하기, 강한 공동체 만들기 등에 사용할 계획이다. 저커버그는 딸에게 보내는 공개편지에서 "나는 페이스북 CEO로 앞으로 오래 일할 것이지만 이런 이슈들은 너나 우리(저커버그 부부)가 더 나이가 들 때까지 기다리기에는 너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그는 '챈 저커버그 이니셔티브'라는 이름의 유한회사를 설립하기로 했다. '챈'은 소아과 전문의인 아내 프리실라 챈의 이름을 딴 것이다.
저커버그 부부의 편지는 페이스북을 통해 공개됐다. 그가 올린 게시물에는 2시간여만에 '좋아요'가 35만 건 달리고 공유가 3만6000여 회 이뤄졌다. 명사들은 페이스북 댓글을 통해 저커버그 부부에게 축하의 뜻을 전하고 기부 공약을 칭송했다.
특히 마이크로소프트 창립자인 빌 게이츠와 그의 부인인 멜린다 게이츠는 "(소식을 접하고)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와우 놀랍다'라는 것이었다"며 "(저커버그의 딸인) 맥스를 비롯해 오늘 태어난 아이들은 우리가 알던 세상보다 훨씬 좋은 곳에서 자라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게이츠는 2010년 더기빙플레지를 통해 840억9000만 달러의 재산 중 자신의 세 아이들에게 각각 1000만 달러씩만 물려주기로 했다. 게이츠 부부가 설립한 빌 멜린다 게이츠 재단의 자산만 현재 380억 달러 가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