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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트로신문 송병형기자] 석유수출국기구(OPEC)를 이끌며 미국 셰일오일 업체들과의 저유가 치킨게임을 주도하고 있는 사우디 아라비아가 과감한 장기 긴축에 나설 것으로 알려졌다. 치킨게임이 언제 끝이 날지 더욱 알 수 없게 됐다.
13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사우디 정부는 이르면 오는 21일 정부 지출 감축과 세입 확대를 골자로 하는 2016년 국가예산안을 발표하고 이어 다음달에는 에너지 보조금을 삭감하고 새로운 세금을 도입하는 등 장기적 개혁을 포함한 향후 몇년간의 경제계획을 밝힐 예정이다.
세계 최대 산유국인 사우디는 저유가로 올해 4000억~5000억 리얄(약 126조~157조 원)의 재정적자를 기록했다. 이는 사우디 국내총생산(GDP)의 20%에 달할 전망이다. 이처럼 재정적자가 심화되면서 나라가 휘청이고 있지만 사우디는 그동안 이를 해결하기 위한 구체적이고 포괄적인 계획을 내놓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 발표를 통해 자신들의 의도를 명확히 할 방침이다. 시장의 불안을 달래야 하기 때문이다. 사우디는 과감한 긴축으로 재정적자를 대폭 줄일 방침이다.
사우디 경제전문가들에 따르면 사우디는 내년 예산에서 공공부문 투자 지출을 대폭 삭감해 올해 정부지출의 20%에 가까운 약 8000억 리얄을 줄일 전망이다. 공공부문의 임금과 보너스 삭감은 정치적으로 민감한 분야라 대상에서 제외된 것으로 보인다.
사우디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추가로 국내 에너지 가격을 인상하는 방안도 고려 중이다. 치킨게임이 언제 끝이 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치킨게임이 길어진다면 국제유가의 기준이 되는 브렌트유가 현재의 배럴당 30 달러 중반선에서 더 폭락해 배럴당 20 달러로 주저앉을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는 상황이다. 사우디는 국내 에너지가 인상을 통해 연간 1000억 달러를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분석된다.
또 사우디는 천연가스 공급연료와 산업용 전력 비용을 인상하는 방식으로 에너지 보조금 삭감도 시작할 계획이다. 전격적 단행이 어려운 국내 휘발유 가격 인상은 이후 수 년에 걸쳐 이행될 것으로 전해진다.
사우디는 여기에 일부 공공기관의 민영화와 새로운 세금을 도입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도시의 미개발 토지에 대한 과세의 경우 이르면 내년 초 도입될 것으로 보인다.
뿐만 아니라 사우디를 비롯해 걸프국 차원에서 부가가치세 부과에 대한 논의도 진행 중이다. 걸프국 중 하나인 아랍에미리트연합(UAE) 관리들에 따르면 UAE는 부가가치세를 3년 내에 도입한다는 목표다.
이번 긴축 개혁은 지난 1월 취임한 살만 국왕의 정부가 처음으로 마련한 것이다. 또 살만 국왕의 아들 모하메드 빈 살만 왕자가 경제개발위원회 위원장으로 취임해 내놓는 첫 작품이다. 경제개발위원회는 사우디 경제정책의 사령탑이다. 국방장관도 겸하는 살만 왕자는 최근 예멘에 대한 사우디 공습을 주도하며 지금까지 주로 국방 문제에 힘을 쏟아 왔다. 저유가로 사우디 재정난에 대한 우려가 커지자 급진적 조치를 내놓을 수 있는 살만 왕자가 나선 것으로 보인다.
사우디 중앙은행 고위관리 출신으로 현재 하버드 대학 케네디 정책대학원 산하 벨퍼연구센터에 있는 칼리드 알수웨렘은 사우디의 긴축에 대해 "사우디가 경제정책의 전략적 재고에 나섰다. 정부 관리들이 경제관리를 위한 새로운 틀을 짜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에 따르면 이번 예산은 경제기획부가 주도로 짜고 있다. 지난 4월 경제기획부 장관으로 취임한 압델 알-파키는 2010~2015년 노동부 장관을 역임한 인물이다. 알-파키는 노동부 장관 재임시절 다양한 개혁을 이행한 것으로 명성을 얻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지난 4일 열린 OPEC회의에서는 산유국들은 석유 감산 합의에 실패했다. 사우디는 이를 주도했다. 생산비용에서 불리한 미국의 셰일오일 업체들을 한계까지 몰아붙여서 승리를 거머쥐겠다는 심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