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거래소가 글로벌 거래소로 발돋움하기 위해 추진 중인 구조개편 방안이 좌초할 위기에 놓였다. 거래소를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는 내용의 '자본시장법 개정안'이 정치권의 대립으로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장에서는 거래소는 물론이고 국내 자본시장의 글로벌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골든타임을 놓칠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온다.
◆거래소 지주사 전환 시급해
27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거래소 지주회사 전환과 기업공개(IPO)가 이뤄지지 않은 곳은 한국과 슬로바키아 2개국 뿐이다.
우리나라가 개혁을 미룬 사이 아시아 주요 거래소들은 구조 개편을 끝내고 한 발 앞서가고 있다.
일본은 2013년 도쿄와 오사카거래소를 지주회사 형태로 통합해 상장한 뒤 싱가포르, 대만 등과 교차거래를 확대했다. 2000년에 일찌감치 IPO에 나선 홍콩은 2012년 세계 최대 금속거래소인 런던금속거래소를 인수하는 등 글로벌 인수합병(M&A)을 통해 영토를 넓히고 있다.
중국은 후강퉁, 선강퉁 등 홍콩거래소와 거대 중국시장간 통합을 확대하고, Chi-next 등 신시장 개설을 통해 자본시장 저변을 빠르게 확장하고 있다.
하지만 지난 2009년부터 6년간 공공기관으로 묶였던 한국거래소는 오히려 뒷걸음질 쳤다. 제도가 뒷받침 되지 않아 국내 시장에 한정된 '우물안 개구리식' 사업에 매달릴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다른 아시아 국가에 비해 경쟁력이 뒤처지다 보니 해외로 투자자금이 유출되면서 국내 증시의 활력이 떨어지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 국내 증시의 시가총액 성장률은 2010년 이후 연 2%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월평균 거래대금도 2011년 188조원을 정점으로 하락하기 시작해 지난해엔 122조원으로 3년새 35.11%나 감소했다.
세계경제포럼(WEF)은 올해 국가경쟁력 보고서에서 한국의 자본시장을 통한 자금조달은 47위, 자본시장 규제 안정성은 78위로 아시아 주요국 중 가장 낮게 평가했다.
◆골든타임 놓쳐 동북아 변방으로 남나
이처럼 기업에 자금을 공급하는 '동맥' 역할을 하는 자본시장이 성장 한계에 봉착하면서 거래소의 구조개혁을 서둘러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자본시장의 핵심 인프라인 거래소의 지주회사 전환과 IPO등을 통해 시장 전체의 경쟁력과 역동성을 회복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국내의 경우 거래소를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자본시장법 개정안은 국회 정무위원회 법안소위 문턱조차 넘지 못한 상태다.
당초 거래소의 상장차익 환원 문제를 놓고 여야 간에 논란을 빚다가 나중에는 거래소 본사 소재지를 부산으로 명시하는 규정을 두고 국회의원들 간에 갈등이 빚어졌기 때문이다.
최경수 한국거래소 이사장은 "자본시장법 개정이 지연되면 이미 10년 이상 뒤처진 거래소 구조개편이 다시 2~3년 늦어져 시장 경쟁력을 잃을 수 있다"고 말했다.
금융투자업계도 국내 자본시장이 재도약할 수 있는 '골든타임'을 놓칠 수 있다고 한목소리로 지적한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정치 싸움에 한국 자본시장이 골병이 들고 있다"면서 "내년 총선 등 정치 일정을 고려하면 올해 안에 법안이 통과하지 못할 경우 현 정부 임기 내 처리가 사실상 불투명해진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우리 자본시장이 동북아의 변방으로 전락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자본시장의 핵심 인프라인 거래소의 구조개편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