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반테러법 강행, 미국 IT기업 속살 벗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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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트로신문 송병형기자] 중국 정부가 미국 정부와 중국에 진출한 글로벌 정보통신(IT) 기업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IT기업의 정보제공 의무를 담은 반테러법을 내년 1월 1일부터 시행하기로 했다. 애플, 시스코, IBM 등 글로벌기업들은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28일 블룸버그통신과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법안 내용 중 글로벌기업들이 우려하는 부분은 제18조다. 이 조항은 IT업체들로 하여금 암호화 키를 비롯해 공안당국이 테러 수사를 위해 요구하는 문제에 대해 기술적 지원과 협조에 나서도록 규정하고 있다. 당초 초안에는 IT기업들이 암호화 키와 다른 민감한 자료까지 당국에 제출하도록 하는 조항이 담겨 있었다. 미국 측의 반발이 이어지자 전날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상무위원회는 법안을 통과시키면서 조항을 수정했다.
하지만 미국 측의 우려는 계속되고 있다. 표현이 순화됐을 뿐 여전히 IT기업들은 중국 공안이나 보안당국이 요구하면 암호화 키를 비롯한 기술정보들을 넘겨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중국 당국이 이 같은 정보들을 확보하게 되면 이른바 '뒷문'(해킹에 취약한 부분)를 통해 사용자들을 감시할 수 있어 사적 정보는 물론이고 사업기밀까지 보호할 수 없다는 게 미국 측이 법안을 반대하는 논리다.
암호화는 온라인 거래 등에 널리 쓰이는 기술이다. 중국에 진출한 대표적 IT기업인 애플이 경우 아이폰 iOS 운영체제에 내장된 암호화 기능을 통해 데이터를 제 3자가 해독 불가능한 암호로 변환시킨다. 애플은 이용자의 통신 내용이 암호화 기술로 철저히 보호돼 자사가 확인할 수 없으며 감청 요구에 응하고 싶어도 응할 수 없다고 밝혀 왔다. 일단 뒷문이 만들어지면 어떤 식으로든 악용될 것이란 우려 때문이다.
중국 측은 미국 측 주장에 대해 지나친 기우라며 일축하고 있다. 리서우웨이 전인대 상무위원회 법제업무위원회 형법실 부주임은 전날 기자회견을 통해 "당국에 협력하는 것이 정상적인 기업활동에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라며 "뒷문을 통해 기업의 지적재산권 등을 침해한다든가 하는 문제는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중국 측은 역으로 미국 측이 반테러활동과 관련해 '이중적인 잣대'를 들이대고 있다고 반격하고 있다. 미국, 영국, 네덜란드가 비슷한 조치를 취하고 있으면서도 중국에게만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 애플은 암호화 기술을 놓고 미국 수사당국과 영국 정부와도 갈등을 빚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미국 정부와 의회에서는 아직 암호화 기술 등과 관련한 움직임이 없지만 수사당국은 애플을 직접적으로 압박하고 있다. 뉴욕 맨해튼 지방검사인 사이러스 밴스는 지난 20일 성명에서 "아이폰은 합법적인 영장이 미치지 않는 미국 최초의 상품"이라면서 "(아이폰 때문에) 범죄가 해결되지 않고 피해자들은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애플이 법 집행을 방해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미 연방수사국(FBI)의 제임스 코미 국장도 지난달 파리 테러 이후 암호화된 스마트폰 데이터에 대해 우려를 나타낸 바 있다.
영국 정부는 범죄와 테러 예방을 위해 정보기관의 권한을 확대하는 법안을 추진 중이다. 이 법안은 애플과 같은 IT 기업에게 암호화를 해제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애플은 이에 대해 지난 21일 8페이지 분량의 반박 문서를 영국 의회에 제출했다. 이 의견서에서 애플은 범죄자나 해커로부터 고객 정보를 확실하게 지켜내는 것이 우선순위라며 법안대로 할 경우 당국이 사용자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뒷문을 갖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현재 중국은 미국 주도의 인터넷 질서에 정면으로 도전하고 있어 IT기업의 암호화 기술 문제는 쉽게 풀리지 않을 전망이다. 중국에서 반테러법이 통과되기 전인 지난 22일 미국 국무부는 법안에 대한 심각한 우려를 나타냈지만 중국은 "이유없는 비난 행위를 중단할 것"을 요구했다. 당시 훙레이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반테러법을 제정하는 것은 국가의 법치건설을 완벽하게 하고 법에 따른 안보 유지와 테러리즘 격퇴의 현실적 수요에 따른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의 관영매체인 신화통신도 ""미국이 중국의 반테러법을 이유 없이 지적하는 것도, 중국 국내법에 대해 함부로 말하는 것도 처음이 아니다"라며 "중국은 주권국가로 다른 나라는 이에 대해 이래라 저래라 할 권리가 없다"라고 중국 정부를 거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