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서 1등 브랜드로 키워낼 겁니다. 한국 경영은 회장님이 계속 살펴 주십시오."(신동일 중국 랑시그룹 회장) 지난해 9월 토종 유아복의 상징과 같은 아가방의 주인이 중국 기업으로 바뀐다는 소식이 시장에 상당한 파장을 일으켰다. 심각한 저출산 그리고 한국 산업에 침투하는 '차이나 머니'의 공세를 압축적으로 보여줬기 때문이다. 아가방앤컴퍼니는 지난 2011년 매출이 2046억원으로 정점을 찍은 뒤 지난해 영업손실을 내는 등 어려움을 겪었다.
'왕서방(중국 자본)'이 황소개구리 처럼 닥치는대로 한국 기업을 사냥하고 있다. '상한 고기(적자 상장사)'도 마다하지 않는다. 올해 10여곳의 코스닥 기업 경영권이 중국 자본에 넘어갔거나 넘어갈 예정이다.
전문가들은 중국 자본의 한국 기업 사냥은 국내 기업의 기술과 노하우를 단시간에 확보하려는 계산이 깔려 있다고 본다. 또 중국에서 한국 기업 상품과 서비스가 인기를 끌다 보니 한국 기업의 힘을 빌려 자국 시장을 공략하기 위한 전략이다.
◆왕서방, 적자 코스닥 기업 사냥
29금융감독원과 현대증권에 따르면 중국 자본의 한국 기업 지분 투자 규모는 올 들어 12억5400만달러(약 1조4531억원, 1~9월 10억3100만달러)였다. 투자 건수는 28건으로 집계됐다.
관심을 끄는 것은 중국자본이 적자 기업까지 닥치는 대로 먹어 치우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10월 차량용 블랙박스(영상저장장치) 국내 2위 업체 미동전자통신이 신세기그룹의 자회사 상하이유펑인베스트먼트에 경영권을 넘겼다. 미동전자통신은 국내 블랙박스 시장에서 2위의 시장점유율을 기록하고 있는 회사다. 미동전자통신은 올해 3·4분기 영업손실액이 3억7000만원으로 전년 동기대비 적자전환했다.
지난 2월에는 중국 게임 개발사 룽투게임스가 인터넷 교육업체 아이넷스쿨을 인수, 사명을 룽투코리아로 바꿨다. 아이넷스쿨은 지난해 연결기준 20억원 규모의 영업손실을 내는 등 수년째 적자를 지속한 기업이다.
3월엔 베이징링크선테크놀로지가 동부로봇(현 디에스티로봇) 최대 주주로 올라섰다. 동부로봇은 지난해 연결 기준 영업손실 54억7700만원을 기록하며, 적자 행진을 지속했다.
북미 박스오피스 1위를 한 애니메이션 '넛잡'을 제작해 유명해진 레드로버도 지난 6월 지분 20.1%가 중국 쑤닝유니버설미디어으로 넘어갔다. 레드로버는 지난 2년 흑자를 내다가 올해 3·4분기까지 55억원 적자로 돌아섰다.
지난 6월 임상시험수탁업체(CRO)인 드림CIS도 270억원에 중국 1위 CRO 업체인 타이거매드에 넘어갔다.
중국 동심반도체는 지난 4월 메모리 반도체 기업 피델릭스 지분을 사들였다.
◆문제 기업 노리는 이유 따로 있었네
중국 자본의 과감한 M&A(인수합병)는 중국 정부가 본토 최대 경제 문제 중 하나인 과잉생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보조금 지급 등을 통해 M&A를 적극 독려한 영향이 가장 컸다.
그러나 중국기업들이 적자 기업을 마다 하지 않는 속내는 따로 있다는 지적이다.
단기간에 앞선 국내 기술력과 브랜드를 흡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투자 목적도 경영 참여를 통한 기술과 브랜드 활용이 대부분이다.
정유신 서강대 경영학부 교수는 "2010년에 단순 지분투자 비율이 79%, 경영 참여 비율이 16%였는데 지금은 지분투자 52.9%, 경영 참여 47.1%로 판도가 바뀌었다"고 분석했다.
코스닥 기업들은 중국 자본을 반긴다. 대부분의 코스닥 상장기업은 뛰어난 기술력에 비해 자본력이 취약하다. 중국 자본을 유치하면 중국 시장 진출 가능성이 커질 뿐만 아니라 보다 적극적인 시장 개척 또한 한결 수월해진다.
한 투자은행(IB)업계 관계자는 "최근 중국 큰 손들의 문의가 많다"며 "국내 기업 오너 입장에서도 최대주주 지분을 중국 기업에 매각하고도 국내에서 경영권을 가질 수 있는 경우가 많아 이를 반기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중국 자본 모니터링 시스템 구축해야
문제는 중국 자본이 호락호락 하지 않다는 점이다. 2005년 중국 상하이차가 쌍용차를 인수했을 때 4년 만에 손을 떼고 떠나면서 '먹튀' 의혹이 일었다. LCD업체 하이디스도 2002년 중국 비오이(BOE)에 매각됐지만 4년 만에 부도 처리되면서 핵심 기술과 일자리만 잃었다는 논란이 불거졌다.
시장 일각에서는 자본의 성격에 의구심을 갖는 시각도 있다. '중국 공산당 고위 간부 그룹인 태자당(太子黨) 자금이 흘러들어와 한국 기업을 자금 세탁 경로로 이용하려는 것 아니냐' '자본 차익을 노린 핫머니다'라는 식의 미확인 루머도 심심찮게 떠돈다.
그러나 법으로 외국인 투자를 제한하는 업종이 아니라면, 중국 자본을 차별대우할 근거도 없다.
정 교수는 "중국 자본투자 후 중국진출 시너지를 얻는 방안으로 M&A를 진행하기 보다는 부분투자로서 상호이익을 얻는 윈-윈(Win-Win) 전략 수립이 필요하다"면서 "유인책(인센티브)을 고려한 한중펀드의 설립, 중국자본의 투자목적 구체화와 실행여부에 대한 모니터링 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