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일 오후 3시. 마포에서 고깃집을 운영하는 김계순(가명·62)씨는 매장에 벽에 걸린 메뉴 가격표를 새로 바꿔 달았다. 소주 출고가격이 줄줄이 인상되면서 올해까지만이라도 가격을 인상하지 않고 버텨보려고 했지만 소주 전 브랜드가 출고가 인상을 결정하자 세밑 힘든 결정을 내렸다고 토로한다. 그는 서민들이 즐겨 찾는 식당이어서 판매 가격을 5000원까지 올리지는 못했다.
#. 여의도 일식집 사장인 이정만(가명·55)씨는 지난달부터 소주 가격을 5000원으로 인상했다. 서민의 술이라고는 하지만 일식 메뉴를 찾는 고객들이 대부분 접대를 위해 매장을 찾는 만큼 가격 인상에 대한 저항이 적다고 판단해 발빠르게 소주 출고가격 인상분을 반영한 것. 그러나 가격 인상 후 소주 판매량은 20% 이상 줄었다.
"국밥 한 그릇 가격이 6000원인데 소주를 5000원 받으면 사먹을 사람이 몇이나 되겠어. 여기 오는 손님 중에 번듯하게 양복 입고 오는 사람 없어. 비싼 소주가 부담될텐데 그렇다고 전처럼 4000원에 팔 수도 없는 노릇이고…."
영등포 시장 인근 식당을 운영하는 정금선(가명·60)씨는 소주 가격 인상으로 고민이 많다. 당장 내년 4일이면 판매하는 소주 전 브랜드의 가격이 오르는데 그는 아직까지 판매 가격을 정하지 못했다.
◆소주 더이상 서민의 술 아니다
식당에는 이미 5000원짜리 소주가 등장했지만 대다수 자영업자와 프랜차이즈 본사들은 아직까지 판매가격을 정하지 못해 고심하고 있다. 일부 식당들이 소주 판매가격을 5000원으로 인상하면서 일부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제조사가 5~6% 올리는데 식당 판매 가격은 5배 가량 높은 25%나 올랐다며 폭리라는 볼멘소리까지 나온다.
식당의 가격 인상률은 왜 출고가와 큰 차이를 보일까. 익명을 요구한 주류 프랜차이즈 관계자는 "출고가가 오를 때 500원단위로 인상한 전례가 없다"며 "다른 식자재 가격 인상을 메뉴에 일일이 반영하지 못한 것이 주류쪽으로 쏠린 현상도 나타난 것"이라고 분석했다.
프랜차이즈업계 중 아직까지 소주 판매가격을 공식적으로 인상한 사례는 없다. 또 다른 프랜차이즈 업계 관계자는 "본사 차원에서 공식적으로 가격을 인상케 하면 비난 여론이 확산될 것을 우려해 먼저 나서는 기업이 없는 상황"이라며 "소주 단품 가격을 인상하더라도 소주와 함께 구성하는 세트 메뉴 등을 보완해 가격인상 부담을 최소화하려는 움직임도 있다"고 전했다.
◆출고가격 얼마나 올랐길래
이처럼 식당에서 판매하는 소주 가격이 오르면서 소비자들은 과연 주류 제조사들이 얼마나 가격을 인상했는지 의문을 제기한다.
소주출고 가격은 최소 3%대에서 최대 6%대 가량 인상됐다.
주력 제품인 360㎖ 병 제품을 기준으로 출고사 인상률이 가장 높은 기업은 롯데주류(처음처럼)로 6.39% 올랐다. 이어 무학(좋은데이·화이트)이 5.99%, 대선주조(C1) 5.67% 순으로 인상률이 높았다. 이번 인상으로 한라산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소주제조사들이 고수해온 900원대 출고가가 무너진 상태다. 한라산은 가장 낮은 3%대 인상에 그쳤지만 출고가는 1114원으로 가장 높았다. 하이트진로(참이슬)의 경우 인상률은 5.62%로 롯데주류나 무학보다 낮았지만 출고가격은 1015.7원으로 가격을 인상한 기업 중 세번째로 높은 수준으로 출고된다.
출고가 인상에 불을 지핀 것은 하이트진로다. 지난달 30일 3년간 동결해왔던 출고가를 전격 인상한 것. 여기에 12월 들어 맥키스컴퍼니, 한라산, 무학, 대선주조, 금복주 등이 줄줄이 가격 인상에 동참했고 롯데주류도 내년 1월 4일자로 가격을 올리기로 결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