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트로신문 정은미기자] 재계가 공정거래위원회의 신규 순환출자 금지 초치로 인해 비상이 걸렸다.
지난 2013년 개정되고 지난해 7월부터 적용된 새 공정거래법은 대기업들이 새로 순환출자를 만들거나 기존 순환출자를 강화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공정위가 지난 24일 삼성그룹 일부 계열사의 순환출자 고리가 강화됐다며 관련 지분을 처분해야 한다고 통보한데 이어 현대차그룹에도 현대제철과 현대하이스코 합병으로 늘어난 순환출자 지분을 처분하라고 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대기업들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특히 이들 기업 모두 수천억원어치의 합병 지분을 팔아야 하는 시한을 불과 두 달에서 일주일 내외로 통보 받으면서 공정위에 대해 일방통행식 행정이라며 재계의 볼멘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30일 재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지난 24일 현대차그룹에 현대제철과 현대하이스코의 합병으로 강화된 순환출자 고리를 해소해야 한다고 통보했다.
공정위에 따르면 현대제철과 현대하이스코의 합병으로 현대차그룹의 순환출자고리 4개 중 2개가 강화됐다. 현대차가 갖고 있던 현대제철 주식은 917만주에서 1492만주로 늘었고 기아차가 갖고 있던 현대제철 주식은 2305만주에서 2611만주로 증가했다.
두 회사의 합병일은 올 7월 1일이다. 현행 공정거래법에 따르면 기존 순환출자 고리에 속하는 계열사 간 합병에 의한 계열출자는 규제 대상으로 삼지 않지만, 합병으로 인해 순환출자 고리가 강화될 경우 늘어난 지분을 6개월 안에 모두 처분토록 규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현대차그룹은 내년 1월 1일까지 합병으로 늘어난 지분 881만주, 약 4607억원(29일 종가 5만2300원 기준)에 달하는 추가 출자분을 처분해야 한다.
그러나 문제는 현대차의 경우는 수천억원어치의 합병 지분을 팔아야 하는 시한을 불과 8일 앞둔 24일에서야 이 같은 통보를 받았다는 것이다. 현대차의 남은 유예 기간을 감안하면 4000억원에 달하는 주식의 매각 대상은 물론 주간회사도 찾기 힘든 상황이다.
현대차 연내 추가 출자분을 모두 처분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보고, 공정위에 유예기간 연장을 요청했다.
현대차 관계자는 "순환출자 구조를 해소라는 측면에서 내려진 판단에는 이의가 없지만 이달 말까지 지분을 처분할 경우 투자자 손실 등 시장 충격이 불가피하다"며 "유예기간 연장을 요청하고 이게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관련 시장 충격을 완화할 수 있는 대책을 강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공정위는 지난 27일 신규 순환출자 금지와 관련한 가이드라인을 발표하며 9월 1일 통합 삼성물산 출범 과정에서 삼성그룹 일부 계열사의 순환출자 고리가 강화됐다며 관련 지분을 처분해야 한다고 밝혔다.
삼성은 내년 3월 1일까지 관련 지분을 처분해야 한다. 처분이 예상되는 삼성SDI의 삼성물산 주식 500만주는 약 73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됐다.
삼성 역시 공정위 입장을 수용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공정위의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유예기간인 2월 말까지 2개월여 밖에 남지 않은 만큼 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 기간을 연장해줄 것을 요청했다.
그러나 공정위는 이와 관련된 조항이 법에 명시돼 있지 않은 만큼 삼성과 현대차의 유예기간 연장을 받아들이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공정위 측은 "해소 기한 연장에 대한 법적 근거가 없어 자칫 특혜 시비가 일 수 있기 때문에 수용은 어렵지 않겠느냐"며 부정적 입장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재계는 "수천억원어치의 지분을 파는 것은 단순한 일이 아니다. 순환출자 고리를 해소하겠다는 정부의 취지는 알겠지만 유예기간에 임박해 통보하고 일정에 맞추라고 하는 것은 일방통행식 행정"이라며 "이는 기업 위에 군림하고 싶은 정부의 과욕"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공정위가 지난 10월 말 지정한 62개 대기업집단 가운데 순환출자 구조가 있는 곳은 삼성과 현대차, 롯데그룹 등 모두 8곳이다. 롯데그룹이 67개, 삼성 7개, 현대차 4개, 현대산업개발 4개 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