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병림 작가 비행경력 10년차 카타르항공 객실 사무장, K-MOVE 중동 해외취업 멘토 「아랍항공사 승무원 되기」,「서른 살 승무원」,「매혹의 카타르」저자
[지병림 아랍승무원의 아랍살이] '젊은 그대의 태양'
카타르항공 취업에 성공했던 지난 2007년 1월은 내 삶의 커다란 전환기였다. '커리어'의 존재를 너무나 하찮게 여겼던 내가 뒤늦게 각성해서 응답을 얻은 해가 2007년이기도 했다. 국문학도 출신답게 멋진 작가로 성공하고 싶었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았다. 쓰고 싶은 글을 마음껏 쓴답시고 '직업'을 밥벌이 수단쯤으로 여겼으니 이십대를 다 보내도록 제대로 된 '커리어'가 쌓일리 만무했다. 하지만 눈을 돌려 카타르에 입성하면서 '계약직' 혹은 기타 등등의 '알바'나 전전하던 청년백수 신분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나도 세계적인 대기업 직원이 되었다는 성취감과 넓은 세상을 누비리란 기대에 카타르로 떠나는 하늘에서의 시간이 꿈만 같았다. 카타르 비행기를 처음 타보던 그 날, 멋진 유니폼을 입고 일하는 선배들의 모습을 훔쳐보며 마냥 신기해하던 내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카타르 입성 후 곧바로 승무원트레이닝이 시작됐다. 그런데 안전이며 응급처치, 서비스를 담당하는 교관들이 하나같이 드세 보였다. 세상에 이런 여자들이 다 있나 싶을 정도로 말과 눈빛이 거침없었다. 짙은 아라빅 메이크업으로 한껏 멋을 내고, 우렁찬 목소리를 내뿜는 교관과는 눈만 마주쳐도 경직이 됐다. 내내 들뜨던 기분은 확 달아나고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었다. 어떻게든 낙오되지 않고 살아남아 정식으로 비행에 투입되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그 밖의 생각은 모두 사치나 다름없었다. 수줍음을 타거나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답을 하면 여지없이 채찍과도 같은 불호령이 떨어졌다. 고향에 두고 온 가족이나 친구들을 떠올리면 향수병이 도져 괜히 마음만 심란했다. 오롯하게 내 안의 생존역량으로 견뎌야 했다. 뭐든 지 원하는 대로 손에 넣을 수 있고, 어른들께 응석을 부릴 수 있었던 한국에서의 삶은 그야말로 천국이었다. 밥도 혼자 지어먹어야 했으며, 단추가 떨어져도 혼자 꿰매야 했다. 힘들다고 기대거나 투정부릴 사람이 없었다.
새벽같이 일어나 서툰 화장을 하고, 매뉴얼을 외우면서 내가 얼마나 감사할 줄 모르던 인간이었던가를 깨달았다. 더 나은 삶을 위해, 기껏해야 다이어트나 보톡스 할인광고에서 답을 찾으려던 자신이 한심스러웠다. 문제의 해결을 늘 환경에서 찾느라 정작 내 안의 가치를 밝히지 못했던 과오를 반성하며 베갯잇을 뜨겁게 적실 때 마다 '탈락'과 '거절'로 점철했던 온 몸의 세포가 힙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오기도 생겼고 욕심도 생겼다. 무엇보다도 삶을 지켜내고 싶었다. 그렇게 혹독했던 트레이닝을 무사히 통과했다. 첫 비행을 앞두고 심장이 터지도록 나를 안아주던 교관님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새끼를 훈육하는 어미 사자처럼 호된 교관님의 가슴이 만두 속살처럼 뜨거웠다. 지금까지 회사와 함께 성장하면서 나를 재구성한 원칙과 초심은 모두 그 무렵에 형성되었다. 신성한 노동의 가치와 그 무엇도 당연시 여겨서는 안된다는 삶의 철학을 일깨워준 카타르항공은 어느 새 내 삶의 '브랜드'이자 태양으로 자리 잡았다.
여자 혼자 그 많은 세월을 어떻게 중동에서 살아왔는가 묻는다면, 오로지 위와 같은 '초심' 때문이었노라 답을 하고 싶다. 초심의 힘으로 10년에 달하는 세월을 혼자서도 충분히 감당할 수 있었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세월을, 삶을 책임지는 힘은 누가 거저 쥐어주지 않는다. 그대도 나아지지 않는 형편과 답답한 실업의 그늘에서 벗어나고 싶은가. 그렇다면 한 번쯤 자신 밖으로 나와 전투적으로 삶을 사랑해 보시기를 권유한다. 세상은 넓고 일자리는 많으며, 밖으로 나와서야 안에서 당연시 여겼던 범사에 감사할 줄도 알게 된다. 그대의 태양은 어디쯤에서 당신을 부르고 있는가? 달려 나가라. 풀죽어 지내기엔 그대는 젊고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