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간 DLS, ELS발행추이자료=한국예탁결제원, 삼성증권
#. 조기 퇴직한 박모 씨(51)는 요즘 잠이 안온다. 지난 2014년 홍콩HSCEI지수를 기초자산으로 하는 주가연계증권(ELS)에 퇴직금의 약 30%를 넣었다. 낮은 금리 때문에 투자할 곳이 마땅치 않아서다. "기초자산 주가가 기준가보다 50% 넘게 떨어지지만 않으면 수익이 생기니 원금을 손해 볼 확률이 없다"는 증권사 프라이빗뱅커(PB)의 말을 들었던 게 화근이라며 땅을 치고 후회한다.
파생상품 투자자들이 '멘붕'(정신적 충격이 크다는 뜻의 속어) 상태다.
유가가 31달러 수준까지 추락하면서 원유에 투자하는 파생결합증권(DLS)의 80%(금액기준) 이상이 손실 구간에 진입했다. 국민 재테크 상품으로 꼽히던 홍콩항셍중국기업지수(HSCEI·H지수)가 기초자산인 주가연계증권(ELS)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올해 만기 2개중 1개는 '녹인' 상태
12일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아직 상환되지 않은 725개의 원유 DLS 중 436개가 원금손실(녹인·Knock-In) 구간에 들어섰다.
발행액 기준으로는 1조1129억원 규모의 DLS 가운데 80.4%인 8948억원이 원금손실 처지에 놓였다.
아직 원금손실 구간에 진입하지 않은 원유 DLS 투자자들도 유가 하락 공포에 떨고 있다.
미국의 추가 금리 인하가 예정된 가운데 중국 경기둔화에 대한 염려가 맞물리면서 유가가 추락하고 있기 때문이다.
11일(현지 시간) 뉴욕상업거래소에서 2월물 서부텍사스산원유(WTI) 가격은 지난 주말보다 배럴당 1.75달러(5.3%)나 낮아진 31.41달러에 마쳐 6영업일 연속 하락했으며 2003년 12월 이후 최저치를 보였다.
원금손실구간에 접어든 DLS는 2013년과 2014년 상반기 국제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 안팎에서 발행된 상품이 대부분이다. 만기가 돌아오는 2016~2017년까지 원유값이 배럴당 80달러 이상으로 회복되지 않으면 투자자들은 깡통을 차게 된다.
골드만삭스는 내년 유가가 배럴당 20달러까지 하락할 것으로 전망했고, 씨티도 올해 초부터 배럴당 20달러 전망을 점친 바 있다.
◆냉정한 판단이 필요한 때
중국증시 급락은 ELS투자자들을 벼랑끝으로 몰고 있다.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홍콩 H지수가 8500선 이하로 추락하면 109개(발행금액 기준 1098억원) ELS가 원금 손실 구간에 들어선다. 8000선 이하면 220개(6780억원), 7500선 이하면 383개(1조6754억원) 규모의 ELS가 녹인 구간에 집입한다.
만약 홍콩 H지수가 7000선까지 떨어져 ELS가 무더기로 원금손실 구간에 진입한다면 10조원대의 손실이 발생할 수도 있다는 추정도 나온다.
홍콩항셍중국기업지수(HSCEI·H지수)를 기초자산으로 하는 ELS는 지난해에만 46조3364억원(전년대비 13%증가)어치 발행되면서 국민 재테크 상품으로 각광받았다.
지난해 중순 이미 중국 증시 쇼크(충격)를 한 차례 겪고 당국의 H지수 기초자산의 ELS 발행 규제에도 시중자금이 대거 중국으로 쏠려 들어간 것이다.
문제는 ELS에 투자자들의 자금이 수십조 원이나 몰릴 만큼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점이다. 원금비보장형 ELS는 보통 주가가 일정 범위 안에 있으면 10∼20%대의 수익을 얻지만 이 범위를 벗어나면 기초자산의 주가 하락폭만큼 원금 손실이 난다. 일정 범위만 벗어나면 손실액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구조다. '악마의 상품'이란 별칭이 붙은 것도 이 때문이다.
지난해 4월 1만4000을 돌파한 H지수는 이후 내리막길을 걷다가 최근 8500선에서 등락하고 있다.
전 균 삼성증권 연구원은 "H지수가 1만2300 중심으로 발행 평균가격이 형성돼 있으며 녹인 배리어(Knock-in barrier·원금손실구간) 평균 가격은 7000 초반대로 형성돼 있다"고 분석했다.
유안타증권 이중호 연구원은 "추가적인 하락이 발생할 것이라면 이익을 포기하더라도(혹은 일부 손실을 인정하고서) 추가적인 손실을 막는 환매 절차에 돌입해야 한다"면서 "하지만 지금 수준이 바닥이라면 기존 가입자들은 현 상품을 유지하거나 오히려 저점에 좋은 기회에서 신규 상품에 가입하는 것을 고려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