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동거녀는 아라빅이었다. 지중해 옆 아프리카 북단에서 일자리를 찾아 카타르에 입성한 그녀는 6개월 선배였다. 여자는 풍성한 속눈썹을 인형처럼 깜빡거리며 소파에 길게 누워 텔레비전을 보며 주로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비행시간이 다가오면 소란스럽게 메이크업과 머리를 만지며 역동적으로 집안을 활보했다. 내가 꿈에도 그리던 유니폼을 아무렇지도 않게 집어 드는 여자를 나는 턱을 괴고 앉아 신기하게 바라봤다. 여자는 내 손에 유니폼 자켓에서 떨어진 단추를 쥐어주곤 했다.
나는 보란 듯이 단추를 꿰맸다. 여자는 이게 끝이 아니라는 듯 올 나간 스타킹을 들고 허둥댔다. 나는 기다렸다는 듯이 한국에서 가져온 고탄력 스타킹을 자진해서 선물하며 얼른 서두르라며 비행을 재촉했다. 나는 기특한 일을 해낸 착한 후배처럼 으쓱해졌다.
하지만 나를 설레게 했던 여자의 습관은 오랜 일상으로 굳어졌다. 내 몸 하나 건사하기도 힘든데, 걸핏하면 새 스타킹을 빌려달라거나 단추를 달아달라며 나를 피곤하게 했다. 급하게 비행을 가느라 거실 가득 어질러둔 배달음식도 더 이상 치워주기 싫었다.
비행이 업인 우리에겐 잘 먹고, 잘 자는 게 일인데, 동거녀의 주변정리까지 하고 다니려니까 짜증이 났다. 거실 신발장에 새로 산 구두를 넣어두면 허락도 없이 신고 다니는 일도 있었다. 어느 날 나는 작정을 하고 따졌다. 도대체 나한테 왜 그러느냐? 내가 만만하냐? 앞으로 네 주변은 네가 정리하고 다녀라. 일장연설을 늘어놓자 여자가 사슴 같은 눈망울로 차분히 답을 했다.
"난 우리가 가족이나 다름없다고 믿었어." 나는 잠시 갸우뚱했으나 금세 정신줄을 다잡고 "내가 네 엄마는 아니잖아!"라고 못을 박았다. 한 동안 그녀와의 사이에 냉기가 흘렀다. 내 쪽에서 며칠간 대화가 없자 어느 날 아이스크림을 사놓고 나를 불렀다. 내키지도 않는 아이스크림을 한 입 베어 물고 빙그레 웃어 주었다.
그러나 아무 것도 나아지지 않았다. 집안을 어질러놓고 다니는 여자의 일상은 금세 되풀이 되었다. 차라리 다른 집으로 이사를 가는 게 어떨까 싶어 이사방법을 수소문하고 있는데 어느 새 눈치 챈 여자가 나를 붙잡았다.
"미안해! 이사만 가지 마…." 여자는 이 말을 남겨놓고 스르르 거실 소파로 몸을 숨겼다. 텔레비전은 여전히 키득거렸고, 어색한 밤은 무겁게 익어갔다.
그 날 새벽, 요의가 느껴져 한밤중에 잠에서 깼다. 부스스한 얼굴로 화장실 문고리를 찾는데 그녀의 방안에서 노란 빛이 새어나왔다. 거실소파에서 곯아떨어져있어야 할 그녀가 어쩐 일로 이 시간에 깨어 방안에 있나 싶었다. 여자는 기도 담요에 무릎을 꿇고 엎드려 열심히 기도를 올리고 있었다. 마른 입술이 기도문을 읊을 때 마다 길게 감긴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여자는 그토록 간절히 무엇을 기도하는 걸까? 새벽마다 신께 엎드려 평화를 구했을 그녀의 진심을 확인하자 그동안 차갑게만 굴었던 내 자신이 부끄러웠다. 아, 그 누구의 마음에 악이 존재하던가? 인간존중, 평화로 귀의하자는 '이슬람'의 어원이 곧은 내 허리를 아프게 가르던 카타르의 새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