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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병림 칼럼]-3화 우리의 현실은 간절한 염원에서 온다.

지. 병. 림 : 소설가, 비행경력 10년차 카타르항공 객실 사무장, K-MOVE 중동 해외취업 멘토, :'아랍항공사 승무원 되기', '서른 살 승무원', '매혹의 카타르' 저자



라마단(ramadan)에 이르자 동거녀는 하루 종일 마른 미역처럼 소파에 늘어져 잠을 잤다. 이따금 한숨을 내쉬며 뒤척거리는 것을 보니 해가 지기만 기다리는 눈치였다. 나는 주변정리에 서툰 동거녀를 피해 거처를 옮겨야 할지 말지 아직 마음을 잡지 못 하고 있었다. 여자가 보란 듯이 거실에 누워 뒤척거리는 것도 내 마음을 돌리려는 일종의 시위로 보였다. 저녁 6시가 되자 여자는 헐레벌떡 이불을 걷어차고 일어났다. 주방으로 달려간 그녀는 프라이팬을 기름에 달궈 밀가루 옷을 입힌 생선을 먹음직스럽게 튀겨냈다. 으깬 콩으로 버무린 매콤한 소스와 미리 준비해 둔 아라빅 빵도 쟁반 가득 푸짐하게 담아왔다. 늘어져있던 여자의 삶이 극한의 허기 앞에서 별안간 생기를 얻는 과정을 나는 흥미롭게 지켜봤다.

"같이 먹지 않을래?"

여자는 푸짐한 저녁상을 가리키며 닫힌 내 마음을 똑똑 두드렸다. 여자는 선한 사람이었다. 집안을 어지르는 고약한 습관이 있긴 했지만 해가 뜬 시간 내내 물 한 모금 대지 않고 단식했다. 누구를 험담하거나 소비를 탐하지도 않으며 일 년 중 가장 뜨거운 달, 라마단을 경건하게 보냈다. 해가 지면 소중한 사람들과 둘러앉아 음식을 나눠먹는 율법까지 온전히 따랐다. 라마단 기간엔 모든 상점과 호텔이 낮 영업을 잠시 중단한다. 기내 승객들도 하나같이 식사는 물론 물조차 마다한다. 알콜 서비스도 최대한 신중을 기한다. 누구의 제재도 없는 집안에서 조차 율법을 따르는 여자를 보자 그간의 내 판단이 경솔했다 싶었다. 여자의 무질서한 일상 가운데도 원칙이 존재했다. 음식은 간이 맞지 않았지만 나는 조용히 수저질을 했다. 하루 종일 단식을 실천한 여자는 음식을 맛있게도 먹었다. 비행스케줄을 잘 나왔는지, 비번인 날은 무얼 할 계획인지를 살갑게 묻는 것도 잊지 않았다. 나는 귀찮은 기색 없이 조근 조근 여자의 물음에 답했다. 그러자 우리의 삶이 같은 울타리 안에 있다는 사실이 별안간 깨달음처럼 다가왔다.

성경책에서나 보던 나라의 언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이들과 어울려 돈을 벌고 꿈을 찾는 일상은 내가 그토록 원하던 삶이었다. 이 꿈을 이루기 위해 내가 가진 모든 걸 투자하고 악착같이 집중했었다. 여자를 찾아온 건 바로 나 자신이었다. 아, 우리가 이루고 있는 모든 현실은 모두 염원하던 바에서 시작되질 않던가. 단식과 금욕의 달, 라마단! 태양이 진 자리에 나온 달은 빛바랜 초심에 빛깔을 입혔다. 나는 달의 구원이 몹시도 기다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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