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등급 하락기업수 및 상하향 배율*상하향배율= 등급상승 기업수/등급하락 기업수자료=나이스신용평가
#대한항공은 빠르면 1월 말께 1500억원 규모의 2년 만기 회사채를 발행하기로 하고 동부 현대 키움 한국투자증권 등 네 곳과 대표주관 계약을 맺었다. 당초 2, 3년 만기 두 종류로 2000억원어치 발행을 추진했다가 판매를 책임지겠다는 곳을 찾지 못해 물량과 만기를 줄였다. 대한항공의 신용등급은 A-에서 BBB+로 강등된 상황이다.
#지난해 10월 두산건설은 250억원 규모 회사채 발행을 위해 전날 수요 예측을 진행했지만 기관 투자자의 매수 주문은 20억원에 그쳤다. 두산건설(BBB→BBB-)도 신용등급이 하향조정된 상황이다.
갈 길 바쁜 기업들이 신용등급 강등이라는 암초를 만날까 전전긍긍하는 분위기다. 웅진, 동양, STX, 대우조선해양 등 믿었던 대기업마저 줄줄이 무너지는 모습을 본 투자자들이 그만큼 기업의 신용등급 변화를 예의 주시하며, 선뜻 투자에 나서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신용등급이 내려가면 기업들은 투자자들에게 웃돈을 주고 돈을 빌려야만 한다.
전문가들은 신용경색이 이어질 경우 한국 경제를 위기로 몰아넣을 수 있다고 우려한다.
◆등급 전망 우려가 현실 되나
20일 신용평가업계에 따르면 나이스신용평가는 건설, 조선, 철강 등 12개 산업의 신용등급을 부정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또 등급전망이 하향 조정된 곳도 18개사에 달하고 있고, 신용등급 하향 감시 대상에 오른 곳도 4개나 된다.
김기필 나이스신용평가 평가기준실장은 "미국 금리인상에 따른 차환위험 및 조달금리 상승가능성, 중국 및 글로벌 경기침체 관련 사업·재무위험 확대가능성, 국내 산업의 저성장 기조에 따른 구조조정 등이 신용등급 하향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한국기업평가도 24개 기업의 등급 전망을 부정적으로 제시했다. 이는 긍정적 12개사의 2배다.
구조조정 대상들도 잠재 후보들이다.
금융감독원은 지난해 말 동아원 등 11개 기업이 워크아웃 대상에, 8개 기업이 법정관리 대상에 이름을 올리는 등 19개 대기업이 올해 추가로 구조조정 대상에 선정됐다.
앞서 발표된 35개 기업을 포함하면 올해 구조조정 대상업체는 총 54곳으로 글로벌 금융위기로 업종별 구조조정이 펼쳐진 이후 최대규모다.
상대적으로 후한 점수를 줬던 국내 신용평가사들의 잣대가 갈수록 엄격해지는 추세인 점도 기업들로서는 부담스럽다.
자본시장연구원 태희 연구원은 "미국의 금리 인상에 따른 차환 위험 및 조달 금리 상승, 중국 및 글로벌 리스크 확대 가능성, 산업 구조조등 등 대내외 불확실성도 여전하다. 2016년에도 신용등급의 방향성은 하향(특히 부정적 전망 기업군) 기조로 가닥을 잡을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한국경제 발목 잡을 수도
지난해 신용평가 3사(한국기업평가 한국신용평가 나이스신용평가)는 168차례에 걸쳐 기업 신용등급을 하향 조정(부도 기업 제외)했다. 1998년(171건) 이후 가장 많은 수치다.
뒷걸음질 치는 한국 기업들의 경쟁력을 여실히 보여주는 하나의 단면이다. 신용등급은 기업의 재무 상태와 향후 성장성을 종합적으로 보여주는 거울이기 때문. 신용등급이 강등된 기업들은 당장 자금 조달 비용이 크게 늘어난다. 가산금리는 올해 상반기 AAA급이 20bp(1bp=0.01%포인트) 내외, AA급이 28bp, A급이 95bp 안팎이었지만 지난해 12월 AAA급이 34bp, AA급이 50bp, A급은 120bp까지 높아졌다.
재계 한 재무담당 부서장은 "대기업이라고 해도 신용등급이 A- 이하면 회사채 발행으로 자금을 조달하기가 쉽지 않다. 경기전망이 어두운 가운데 조달 금리까지 높아지면 경영이 더 어려워 질 수 있다"고 불안감을 전했다.
기업 신용리스크는 가계나 국가 경제에 미치는 악영향도 크다. '신용등급 하락→투자 위축→실적 악화→소비 위축→경기 침체'의 악순환 고리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수출 부진 등 한국경제가 흔들리고 있다는 점도 이런 우려를 더욱 부채질한다. 미국의 금리인상으로 시작된 신흥국 금융 혼란은 이미 한국 수출 기업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주기 시작했다. 한국 수출에서 중국을 포함한 신흥 시장이 차지하는 비중은 58%에 이른다. 한국은행은 최근 올해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3.2%에서 3.0%로 하향조정했다.
저유가도 에너지를 전량 수입해야 하는 한국 경제에 '축복'으로 받아들여졌지만, 이젠 긍정적 효과가 제한적이어서 '재앙'이 될 가능성이 우려된다.
원인이 복합적인 만큼 그 해법을 찾기도 쉽지 않다. 전문가들은 '언발에 오줌누기'식 대응보다 근본적인 체질 개선을 주문한다.
이근태 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경기부진의 원인이 낮아진 성장잠재력 때문이라면 부양책 보다 구조개혁과 체질개선으로 경제의 실력을 높이는 것이 중요할 것"이라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