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 병. 림 : 소설가, 비행경력 10년차 카타르항공 객실 사무장, K-MOVE 중동 해외취업 멘토, :「아랍항공사 승무원 되기」,「서른 살 승무원」,「매혹의 카타르」저자
해가 지기를 기다렸다가 나는 여자를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라마단(ramadan) 율법을 지키느라 마른 화초처럼 누렇게 뜬 그녀의 얼굴에 달빛이라도 드리워 주고 싶었다. 여자가 따르는 율법은 인간이 죄로부터 멀어지기를 바란다. 이슬람의 신비는 오로지 실천하는 자의 것이다. 서른 번의 낮 동안 식음을 전폐하며 가난한 자의 굶주림을 이해하기 위해 애쓴 여자는 갈수록 야위어 갔다. 그 와중에 무리 없이 비행스케줄을 소화하는 여자가 나는 대견하면서도 안쓰러웠다.
이튿날 여자는 마른 입술에 립스틱을 바르고 비행에 나섰다. 화장으로 애써 가린 기력 없는 얼굴이 겨우 생기를 입었다. 여자는 차분한 동작으로 캐빈과 주방을 넘나들면서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해냈다. 서비스가 끝나자 제일 먼저 음식을 꺼내 허겁지겁 먹기 시작했다.
"아직 해가 지지도 않았는걸?." 비행기 창 너머의 푸른 하늘을 가리키며 나는 조심스럽게 지적했다. 여자를 배려하느라 나 역시 식사를 못 하고 있었다. "지금 먹고, 밤 동안 단식하면 돼." "임산부나 노약자가 아니어도?." 나는 답변의 진위여부를 가리려다 말고 물 잔을 내밀었다. 체할까봐 걱정스러웠다.
나는 다른 무슬림 승무원 B에게 다가갔다. "뭐 좀 먹지 그러니? 저 친구처럼 지금 먹고, 밤 동안 단식하면 되잖아." B는 화들짝 고개를 들어 먹기 바쁜 여자를 쏘아보았다. "맙소사! 저건 아니야. 아니야. 율법은 임의로 조정할 수 없어." B는 안타깝다는 듯 혀를 차며 여자로부터 최대한 거리를 두고 앉았다.
나는 공연히 두 사람 사이의 불화를 조장한 것 같아 겸연쩍었다. 갑자기 입맛도 뚝 떨어져물 한 모금 당기지 않았다. 먹음직스런 스테이크와 생선요리가 가득했지만 음식을 삼킨다는 행위가 사치스럽게만 느껴졌다. 나는 랜딩을 하고 체류호텔에 이르는 동안 단식했다. 선행만 일삼아도 모자란 라마단 기간 중에 본의 아니게 이간질을 한 것 같아 마음이 불편했다.
비행을 마치고 호텔방에 도착해서야 해가 진 것을 확인하고 단숨에 물을 들이켰다. 갈증과 허기에 찌들었던 위장에 물이 진입하자 온몸의 혈류가 일제히 율동하기 시작했다. 아, 시원하다. 갈증과 피로가 한꺼번에 씻겨나간다. 텅 빈 위장이 맑은 물로 채워질 때 마다 위벽이 깨끗하게 씻기는 기분이다. 낮 동안 나를 옥죄던 죄의식과 남아돌던 열량이 모조리 씻겨나간다. 몸과 마음이 한 결 가뿐하다. 아, 끼니를 거르고도 탈 없이 생이 유지되다니. 비우고야 채워짐을 모르던 날들이 덩달아 단식하며 생기를 얻은 라마단의 비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