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 캐리 트레이드 청산'이 또다시 본격화될 조짐이 일고 있다는 경고음이 세계 금융시장에 울리고 있다.
캐리 거래는 엔이나 프랑스 프랑 등 저금리 통화를 빌려 미국과 유럽, 오스트레일리아 등 고금리 국가의 통화·자산에 투자해 이익을 얻는 금융기법으로, 헤지펀드가 주로 활용한다.
엔 캐리 청산우려가 커진데는 미국 달러에 대한 매력이 떨어지고 있고, 유가하락과 금융시장 불안으로 유럽 중앙은행이 추가 통화정책 완화를 예고하면서 이들 시장을 피하려는 것으로 풀이된다. 또 계속되는 달러 약세로 그동안 엔 캐리 트레이드를 통해 누려 온 달러화 자산 투자에 따른 이득, 만기 상환 시 기대되는 환차익 등이 줄어들고 있는 것도 엔 캐리 트레이드 청산을 부채질하고 있다. 엔 캐리 청산은 달러를 팔고 엔화를 되사려는 움직임을 부추겨 당장 외환 시장에서 엔화 가치 상승으로 이어지고 있다.
◆'엔 캐리 청산' 금융시장 촉각
15일 블룸버그에 따르면 지난 1월 29일 일본은행의 마이너스금리 도입 결정 직후 달러당 121엔까지 하락한 엔화 가치는 4거래일 만에 116엔 중반까지 하락(엔화 가치 상승)했다
지난 10일 뉴욕 외환시장에서 달러당 113엔대에 진입한 엔화가치는 11일 달러당 112엔대로 하락했다. 이는 일본은행이 2차 양적·질적완화(QQE)를 발표한 지난 2014년 10월 말 이후 1년 3개월 만에 처음이다.
엔화 가치 상승과 달러화 약세 추세가 계속되면 '달러 매도 엔화 매입'을 가속화할 가능성이 크다.
일본의 외환보증금거래 플랫폼 업체인 도쿄 가이타메닷컴가 집계한 '엔달러 전망 확산 지수(DI)'는 지난 1월 기준선(50) 아래로 떨어졌다. 미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 자료에 따르면 헤지펀드를 비롯한 투기세력들의 엔 순매수 포지션은 지난 9일 현재 4만3232계약으로 일주일 전 3만7245계약에 비해 급증했다.
극단적인 전문가들은 '1달러=100엔' 시대가 열릴 것이란 전망도 하고 있다.
엔 캐리 거래가 늘어나면서 시장의 관심은 98년 러시아 금융위기와 같은 상황이 재연될 것인가에 쏠리고 있다. 당시 엔이 사흘 새 18%나 오르면서 헤지펀드들은 공황 상태에서 엔 캐리 자금 청산에 나섰다. 이 와중에 세계적 헤지펀드 롱텀캐피털매니지먼트는 파산했다. 지난해 중반, 신흥시장 증시는 일본의 금리 인상을 앞두고 엔 캐리 자금이 이탈하자 급락했다.
그러나 이런 극단적인 위기가 재연될 가능성이 낮다는 게 대체적인 견해다.
마이너스 금리 정책을 쓴 일본 중앙은행이 이자율을 높일 가능성이 크지않다는 게 가장 큰 이유다. 또 엔 캐리 트레이드의 핵심 요인인 일본과 다른 나라의 금리 차가 여전히 크다. 금리가 낮은 국가에서 돈을 빌려 금리가 높은 국가의 금융상품에 투자되는 엔캐리자금은 주로 1년 이상의 중장기적 투자에 많이 쓰이는 만큼 갑작스런 거래 청산이나 변경이 쉽지도 않다.
◆최대 3조 이탈할 수도
엔 캐리 자금은 전 세계적으로 56조엔(주식 25조5000억엔, 채권 30조3000억엔) 정도로 추산된다.
엔 캐리 청산으로 엔화 강세가 지속되면 국내 수출주에는 분명한 호재다.
하지만 꼭 반길 일 만은 아니다. 이른바 전염 효과다. 미국 유럽 등 전 세계 채권과 주식 가격이 폭락하면 국내 금융시장의 불안요인이 된다. 또 일본이 선진국에서 해외 투자 자금을 회수하면 '금융규제 이슈→미국·유럽 금융기관의 위험자산 축소→미국계 매도'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 2014년 4월 이후 국내 주식시장에 유입된 일본계 자금은 4조9000억원 가량이다. 이는 일본 해외 주식투자의 2%에 해당한다.
대신증권 오승훈 연구원은 "과거 패턴(2008년~2010년 엔캐리 청산) 적용시 약 3조원 가량이 빠져나갈 수 있다"면서 "다만 유입된 돈의 대부분이 일본 공적 연금 매수와 연결돼 있어 한꺼번에 빠져나가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소비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익명의 한 애널리스트는 "국내 부동산과 자본시장에서의 자금이탈을 확대시키고 부동산 등의 자산가격 하락을 유도, 소비자의 가처분소득을 약화시키고 소비에 부정적인 영향력을 제공할 것"이라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