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지역에 있는 자동차업체 A사는 최근 3개월 사이에 올해 환율 전망치를 2번이나 바꿨다. 지난해 11월 말 달러당 1150원으로 잡았다가 미국의 추가 금리 인상 우려와 중국발 리스크로 환율이 다시 상승기조(가치하락)로 돌아서면서 재차 수정작업에 들어간 것이다. 원자재를 들여와 가공하는 이 업체의 재무관계자는 "환율이 1원 움직일 때마다 순이익이 많게는 수 억원에서 많게는 두 자릿수까지 왔다 갔다 한다"며 "환율이 오르는 게 반갑지만 세계 경제가 살아나지 않는다면 큰 의미를 두기 힘들다"고 하소연했다.
원-달러 환율이 '롤러코스터' 같은 움직임을 보인다. 기업들은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할지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환율이 오른다 해도 예전처럼 수출 효과가 크지 않아서다.
증시에서도 외국인과의 불편한 동거가 이어지고 있지만, 불안한 모습이다.
환율상승이 기업과 자본시장에 모두에 부담될 수 있다는 지적이 적잖다.
◆기업들 '환율멀미'
22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보합으로 1234.4원에 마감했다.
통상 환율이 오르면 수출에 도움이 되고, 떨어지면 수입 여건이 좋아진다고 하지만 요즘처럼 예측하기 힘든 상황에는 이런 분석도 소용이 없다.
수출입 현주소를 보면 잘 알수 있다.
산업통상자원부의 '2016년 1월 수출입 동향'에 따르면 1월 수출은 367억 달러에 그치며 지난해 1월보다 18.5% 급감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충격을 받았던 2009년 8월(-20.9%) 이후 최대 낙폭이다. 한국은행은 환율 상승이 우리 수출여건 개선에 미치는 효과가 크지 않을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한은은 "국제 분업 구조가 진전되며 수출 제품의 수입재 중간투입 비중이 늘었고, 품질과 브랜드 인지도 등 비가격 경쟁력이 높아졌으며, 수출시장의 다변화로 환율변동의 영향력이 감소했다"고 설명했다.
국제금융센터 김권식 연구원은 "생산활동의 국제분업으로 교역 증대에도 불구 수출의 부가가치는 오히려 줄어드는 추세에 있다"면서 "비가격경쟁력을 통한 고부가가치 창출이 성장잠재력의 관건이다"고 말했다
환율이 큰 폭으로 움직일 때마다 기획재정부가 "급격한 쏠림현상은 시장에 불안감을 줄 수 있다"고 경고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최근 홍승제 한은 국제국장과 황건일 기획재정부 국제금융정책국장은 공동 명의로 "한은과 정부는 최근 원-달러 환율의 움직임과 변동성이 과도하다고 생각하며 시장 내 쏠림 현상이 심화되는 것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롤러코스터' 환율 움직임을 막기 위해 정부가 규제 3종 세트(선물환 포지션 한도 규제, 외환 건전성 부담금 도입, 외국인 채권투자 과세)를 도입했다. 또 중국과도 통화스와프를 맺었다. 하지만 최후의 보루 역할일 뿐 평시에 출렁이는 환율 움직임을 완화하는 데는 큰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적잖다.
◆원화 가치하락과 외국인의 불편한 동거
원-달러 환율 상승에도 증시에서는 외국인 매수세가 이어지고 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외국인은 최근 3 거래일 동안 2929억원 어치를 사들였다.
IBK투자증권 김정현 연구원은 "본래 원-달러 환율 상승은 외국인 환차손 우려로 이어지며 외국인의 순매도를 불러와 국내 증시에 부담으로 작용한다"며 "그러나 최근 외국인은 국내 증시에 투자해 얻을 수 있는 자본차익이 환차손보다 크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고 진단했다.
그러나 아직 외국인 '바이(Buy)코리아'에 대한 기대는 낮다. 국제금융센터에 따르면 최근 8주 동안 한국시장에서는 29억6900만 달러가 빠져나갔다.
원-달러 환율화 코스피 상관관계도 -0.85이다. 원-달러와 외국인 순매수도 -0.77(2009년 이후)로 역 상관관계에 있다.
대신증권 이경민 연구원은 "외국인이 자동차 및 부품 업종을 순매수함에 따라 외국인 순매수가 좀 더 이어질 개연성은 있다"면서 "다만, 가격메리트나 환율효과로 인한 외국인 순매수도 길게 볼 수 없다"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