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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인물

[지병림 칼럼] -7화 소울 푸드

지병림 : 소설가, 비행경력 10년차 카타르항공 객실 사무장, K-MOVE 중동 해외취업 멘토, :「아랍항공사 승무원 되기」,「서른 살 승무원」,「매혹의 카타르」저자



중절모를 눌러쓰고 '프리미엄 클래스'에 탑승한 영국 신사는 비행 내내 식사를 하지 않았다. 컴퓨터를 꺼내 열심히 무언가를 타이핑하거나 경제신문을 펼쳐 읽다가 종종 창밖의 하늘을 내다보며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깨어있는 동안 몇 차례 마실 것을 권해보았지만 번번이 정중하게 사양했다.

카타르에서 휴스턴까지 무려 14시간이 넘는 시간이었다. 마침내 12시간이 지나서야 다시 한 번 간단한 아침이라도 드실 것을 권유했다. 신사는 메뉴를 찬찬히 훑어보더니 손가락으로 첨가된 재료들을 가리켰다. "이건 별로 내 건강에 이롭지 않군요." 그는 메뉴마다 구실을 만들어 식사를 거부했다. 마침내 비행기가 착륙을 준비하자 신사는 간식으로 준비해 둔 초콜릿을 한 움큼 삼킨다. 그는 안심한 얼굴이다.

'이코노미 클래스'에서는 특별식을 받지 못한 인도 승객이 끊임없이 불만을 토로했다. 이 잡듯 뒤져봤지만 분명히 그녀가 주문했다던 특별식은 명단 어디에도 없다. 워낙 채식주의자가 많은 터라 승무원 식사까지 채식은 온통 동이 나고 말았다. 최후의 수단으로 프리미엄클래스에 채식 메뉴가 남아 있는 지 확인했다. 다행히 14시간 내내 건강상의 이유로 식사를 사양한 영국 신사 덕분에 급한 불을 끌 수 있었다. '프리미엄 클래스'에서 색감부터 다른 식사를 공수해오자 그제야 흡족한 얼굴이다.

나는 아까부터 먹은 것도 없는데 속이 더부룩하다. 샐러드를 조금 먹다 남기고, 카모마일 차에 꿀을 타서 마신 게 전부다. 기체가 고도를 낮추며 하강하기 시작하자 몸 안의 장기도 수축을 시작한다. 갑작스런 허기가 한꺼번에 몰려온다. 호텔에 짐을 풀자마자 가까운 한인 타운으로 나갔다. 아담한 한식집에 자리를 잡고 순대국을 시켰다. 뜨거운 국물을 훌훌 떠 마신다. 부대끼던 속이 단숨에 훤히 뚫린다. 밥을 한 술 떠서 눈을 감고 천천히 씹는다. 아, 달다. 온 몸이 녹아버릴 것만 같다. 이제야 삶이 기력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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