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브로드밴드와 CJ헬로비전의 합병 추진이 암초를 만났다. 외국인투자가에 영향을 미치는 세계 최대 의결권 자문회사 'ISS(Institutional Shareholder Services)'가 합병에 반대 의견을 냈기 때문이다.
재계는 삼성물산에 이어 CJ헬로비전까지 부쩍 늘어난 외국계 자본의 공격이 기업 경영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고 우려한다.
25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ISS는 최근 보고서에서 "합병법인에서는 이사회가 주주들의 동의를 얻지 않고 총 발행주식의 20%를 초과하는 전환사채를 발행할 수 있다"며 이같이 밝혔다.
이번 주주총회의 합병 승인 안건에는 이사회 결의만으로 발행할 수 있는 주식의 액면 총액을 합병 전 4000억원에서 합병 후 1조원까지 늘리도록 정관을 변경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ISS는 기존주주의 주식 희석을 우려했다. 만일 합병법인이 주식을 대량으로 추가 발행할 경우 기존 주주의 지분율이 상대적으로 급감해 의결권 약화, 배당액 감소 등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
ISS는 아울러 주주들이 가지는 주식매수청구권도 매력적이지 않다고 지적했다. 매수 청구가액인 1만696원이 보고서 작성 당시 주가 1만1600원에 비해 오히려 싸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합병 승인 안건이 통과된 후 이에 반대하는 주주가 주식을 팔 경우 손해를 감수 해야한다는 것이다. CJ헬로비전 주가는 이날 1만1650원을 기록했다.
ISS는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의 자회사로 세계 주요 기업의 주주총회 안건을 분석, 어떻게 의결권을 행사할 것인지 조언해 준다. 국내 사정에 어두운 외국인은 ISS의 보고서를 참고해 찬반을 결정하는 경우가 많다. 이에 따라 합병 여부를 결정할 27일 임시 주주총회에 이번 보고서가 어떤 영향을 미칠지 관심이 집중된다.
이미 시장에서는 양사의 합병을 놓고 논란이다.
반대론자들은 이동통신 시장에서 절반에 육박하는 점유율을 보이고 있는 SK텔레콤과 케이블TV 1위이자 알뜰폰 1위 사업자인 CJ헬로비전의 M&A가 경쟁 촉진을 기본 방침으로 하는 정부의 통신정책의 근간을 흔들 수 있다고 지적한다.이는 결국 요금 인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반면, 찬성론자들 지배력 전이가 발생하더라도 사후 규제로 보완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ISS의 보고서가 구속력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한 외국계 금융투자회사 한 관계자는 "ISS와 다른 투자 판단을 할 경우 회사 내부 심의위원회 등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해 외국계 펀드는 이들의 의견을 따르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한국거래소 상장공시시스템에 따르면 CJ헬로비전 주식 29만3749주를 보유한 베어링자산운용은 이미 ISS가 지적한 바와 같은 취지로 지난 23일 합병 반대 의결권 행사를 공시했다.
SK텔레콤측은 CJ헬로비전의 외국인 지분율이 낮아 큰 영향은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또 ISS가 신뢰성 있는 기관이지만 실제 주총장에서는 권고와 상반된 결과가 작잖게 나온다. 삼성물산-제일모직의 합병 사례가 대표적이다. 해외에서도 지난 2004년 피아트와 크라이슬러의 합병을 앞두고 ISS는 피아트 주주들이 합병안에 반대해야 한다는 의견서를 냈다. 합병으로 주주 권리가 약화된다는 판단에서다. 그러나 주주 80%가 찬성했다. 이밖에 구글 보상위원회의 이사진 재선임 안건, 듀폰 이사 선임, 소니 최고경영자(CEO)인 히라이 가즈오 재선임, 도요타의 신주 발행 등에서도 반대 결과가 나온바 있다.
한 대기업 최고경영자는 "삼성물산-제일모직의 합병의 사례에서 보듯 외국계 자본의 공격이 부쩍 늘고 있다"면서 "투기적 공격에 계속 노출된다면 경영 안정성이 위협받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