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경제와 영욕을 같이해 온 증권시장이 오는 3월 3일 증권선물거래소 개설 60주년을 맞는다. 사람으로 치면 천지만물의 이치에 통달하게 되고 듣는 대로 이해하게 된다는 '이순(耳順)'의 나이다.
지난 60년 동안 증권시장은 그야말로 파란과 우여곡절로 점철됐다. 잇따라 터진 증권 파동과 불공정 매매로 증권시장은 '투기장'이라는 오명을 받기도 했지만, 경제개발이 한창이던 90년대 중반까지는 산업자금을 공급하는 젖줄 역할을 했다. 특히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와 인터넷 버블, 유럽발 재정위기 등 난관을 극복하고 세계 14위권의 주식시장으로 이제 새로운 미래를 향해 달리고 있다.
◆한국 증시의 역사
우리나라에서 실질적인 주식거래가 시작된 것은 일제시대였다. 현대적 거래소가 형태를 갖춘 것은 1956년 당시 재무부의 주도하에 설립된 대한증권거래소가 처음이었다.
1956년 3월 3일 증권거래소 서울시장(명동)에서 역사상 처음으로 공식 거래소에서의 주식거래가 이뤄졌지만 당시 상장종목은 조흥은행과 저축은행, 한국상업은행, 한국전력 등 12개사 주식과 건국 국채 3종에 불과했다.
초기에는 거래소에 모인 중개인들이 호가를 내면 거래소 직원이 망치를 두드려 가격을 결정했다. 이른바 '격탁매매'였다.
격탁매매 방식은 78년 폐지되고 육각형 모양의 단상(포스트)에서 거래가 이뤄지는 '포스트매매'로 대체됐다. 이듬해 거래소는 서울 여의도에 새 둥지를 틀었다. 증권사들도 여의도에 몰려 여의도는 '증권가'로 자리잡는다.
1997년엔 증시의 상징인 포스트가 전산매매시스템에 자리를 내줬다. 실기간 매매와 결제가 가능졌다. 외국인 투자도 허용됐다. 전산매매가 주식투자의 형태를 바꿨다면 92년에 이뤄진 증권시장 개방은 증시의 질을 변화시켰다. 97년 9월 1일에는 외국인 주식투자한도가 완전히 폐지되면서 한국 증시가 본격적으로 국제무대에 등장하게 된다. 이제 온라인 거래의 비중은 전체 거래의 53%, 외국인투자 비중은 30%에 안팎에 이른다.
2005년에는 기존 증권거래소, 선물거래소, 코스닥증권시장, 코스닥위원회 등 4개 기관을 하나로 묶은 통합 거래소가 출범, 부산으로 본사를 이전했다. 줄곧 '셋방살이'를 했던 거래소는 지난해 부산 문현동에 새 둥지를 마련, 본격적인 부산시대를 열어가고 있다.
◆증권사 38%만 살아남아
60년 동안 수많은 기업이 증시에 등장했다 사라졌다. 조흥은행, 저축은행, 한국상업은행, 흥업은행, 대한해운공사, 대한조선공사, 경성전기, 남선전기, 조선운수, 경성방직, 대한증권거래소, 한국연합증권금융 등 초대 상장사 중 남은 기업은 3곳 뿐이다. 해운공사와 조선공사는 각각 한진해운과 한진중공업으로, 경성방직이 경방으로 명맥을 잇고 있다. 현재 상장기업수는 총 2037개다.
퇴출, 합병 등으로 사라진 증권사도 무려 90개사에 이른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정부의 허가를 받아 설립된 총 140개사 중 국채파동 주식파동 외환위기 등을 거치면서 57개사로 줄었다. 38% 가량만 살아남은 셈이다.
이 중 단 1년을 버티지 못하고 없어진 증권사들도 있다. 1953년 설립된 국제증권은 11개월 뒤인 이듬해 4월17일에,1954년 9월 6일 설립된 대도증권은 단 6개월 만인 1955년 3월 5일 허가가 취소됐다. 역사 속으로 사라진 곳 중 가장 오래 살아남았던 곳은 한흥증권이다. 1954년 설립된 이 회사는 한일증권→한빛증권→우리증권으로 이름을 바꾼뒤 지난해 3월 LG투자증권에 합병되면서 51년 만에 허가가 취소됐다.
현존 증권사 중 최고참은 1949년 11월 설립된 대한증권(현 교보증권)이다. 증시의 부침에 따라 증권사 이름도 한보증권→대보증권→럭키증권→LG증권→LG투자증권→우리투자증권→NH투자증권 등으로 변신한 곳도 있다. 반면 신영 서울 한양 부국 신흥증권은 50년째 한 이름을 고집하고 있다.
미래에셋증권이 KDB대우증권을 품에 안으면서 자본금 8조원대의 초대형 증권사도 탄생했다.
◆새로운 변화가 필요한 시기
한국 증시의 시가총액은 1조원대로 시가총액 규모 면에서 세계 14위 시장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우리 증시가 산업자본 조달과 자산증식으로 경제발전에 기여하는 선순환 구조를 갖추기 위해서는 해결해야 할 과제도 적지 않다는 지적이다.
시가총액 규모 14위권 수준인 우리 증시에 아직도 외국 기업이 찾기가 힘들다.
최경수 이사장은 "올해 상장 예정된 외국 기업이 15개인데 그 중 중국이 10개고 미국, 영국, 인도네시아 등 외국 기업들도 준비하고 있다"면서 "이 외에도 상장주간사를 정해놓은 해외 기업이 26개에 달하는 등 많은 해외기업이 우리 시장에 상장되면서 국제화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천덕꾸러기 신세가 된 파생상품 시장도 살려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지주회사 전환과 기업공개(IPO)가 선행돼야 한다.
최 이사장은 "한국거래소 지주사 전환과 증시 상장이 무산되면 우리나라 자본시장이 10년 이상 퇴보하는 게 불가피하다"고 호소하고 있다. 그러나 국회가 밥그릇 싸음에 열중하면서 거래소 지배구조 개편 등을 담은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자본시장법)' 개정안은 자동 폐기 위기에 놓여 있다.
거래소가 이렇게 절박하게 매달리고 있는 것은 우리나라 증권거래소가 이대로 가다간 아시아 변방의 구멍가게로 전락해 버릴지 모른다는 위기감 때문이다.
런던거래소와 홍콩거래소는 이미 2000년 들어 지주사 전환과 상장을 추진했고 뉴욕거래소 나스닥 일본거래소도 2006~2007년 지주사로 전환하고 상장까지 끝마쳤다.
하지만 한국거래소는 2009년 1월 공공기관으로 묶이면서 국내시장을 관리·운영하는 기능에 머물렀다. 덕분에 한국 자본시장은 변방으로 밀려나고 있다. 지난해 기준 거래소 자기자본이익률(ROE)은 4%로 싱가포르SGX(35%) 대비 10분의 1, 홍콩HKEx(24%) 대비 6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더 나아가 글로벌 거래소는 금융IT정보회사로 변신을 시도 하고 있다.
자본시장연구원 이효섭 연구위원은 "자금중개 기능이 약화되자 글로벌 거래소드은 지수 및 정보사업에 대규모 투자에 나사고 있다"면서 "또한 사업 다각화를 위해 장외파생상품 청산 결제 서비스를 확대하고, 블로체인 등 IT기술을 활용해 거래 대상 상품을 비공개 기업으로 확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한국거래소도 지주회사 체제로 신속히 전환, IT정보사업을 중심으로 사업 다각화를 추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