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0대인 김모씨는 20억원대의 운용자산(지난해 말 기준)을 보유한 큰 손이다. 그는 물려받은 자산과 금융소득으로 생활하는 '위험 중립형' 투자자로 분류된다. 랩어카운트에 투자했다가 쓴맛을 본 그는 최근 코스피마저 불안하자 고민에 빠졌다. 미국 금리 인상 가능성과 중국 등 전 세계 경기 회복에 대한 기대도 크지 않아 부담을 느낀 것.
이에 김씨가 선택한 대안은 사모형 주가연계증권(ELS)이었다. 무엇보다 사모형 ELS는 맞춤형 설계가 가능하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그의 예상대로 사모형 ELS의 지난 1년 간 기대수익률은 연간 6% 중반~8% 후반이었다.
#. 지난해 말 우리-블랙스톤PEF는 아이마켓코리아 지분 166만주(4.62%)를 시간외대량매매(블록세일)로 모두 처분했다. 매각 가격은 주당 2만5728원이었다. 이 거래로 우리-블랙스톤PEF는 427억원을 손에 쥐었다.
위험한 도박쯤으로 치부되던 사모시장이 뜨고 있다.
홍콩항셍중국기업지수(HSCEI·홍콩H지수)의 폭락으로 외면받던 ELS시장은 사모 ELS가 불씨를 살렸다. 저금리 기조가 이어지면서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한 법인이나 고액 자산가들이 보다 높은 수익을 쫓아 투자에 나서고 있는 것.
한때 '사망진단'까지 받았던 사모펀드 전문회사(PEF)들은 그동안 소리 없이 모아온 약 60조원 가량의 '실탄'을 갖고 최근 여기저기 사냥감을 찾아다니고 있다.
◆강남 큰손 김여사가 사모 ELS에 빠졌다
7일 한국예탁결제원,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 유안타증권에 따르면 지난 2월 ELS발행액은 2조8195억원으로 전달 대비 949억원 감소했다. 발행 건수는 1030건 (전월 대비 22건 감소)이었다.
공모 발행이 1조 5791억원으로 전월 대비 2359억원 줄었다.
반면 사모는 1조 2404억원으로 전달 보다 1410억원이 늘었다.
'사모ELS'를 쫓는 이유는 뭘까. 공모와 달리 기초자산, 상품 구조 등을 바꿀 수 있는 데다 투자 시점을 자신이 직접 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투자자들의 취향을 고려한 '맞춤형' 설계가 가능하다는 것.
또한 예전에는 사모 ELS가 기관들 몫이었지만 지난해부터 거액 자산가를 비롯한 개인투자자를 위한 상품이 증가하면서 상품 숫자가 늘고 있다.
증권사 입장에서도 장사하기 편하다. 증권사 한 관계자는 "회사도 공모보다 쉽게 업무를 진행할 수 있어 사모 ELS를 발행하는 경향이 있다"고 전했다. 사모 ELS를 요청할 때 규모가 적게는 10억원에서 많게는 수 백 억원에 이른다고 관계자들은 전한다.
사모ELS의 가장 큰 매력은 수익률이다.
유안타증권 이중호 연구원은 "공모 발행은 시장의 KI(Knock-In) 우려로 감소했지만 사모 투자자는 오히려 투자를 늘리고 있다"면서 "위험(Risk)를 감내할 수 있느냐의 차이가 나타난 것"이라고 해석했다.
◆M&A시장의 공룡 PEF
PEF는 M&A시장에서 없어서는 안 될 큰 손이다.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국내 등록 PEF 규모는 지난해 말 기준 58조5000억원이며 올해 사상 처음으로 60조원을 돌파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중 지난해 설정된 PEF는 총 76개이며 신규모집 규모는 전년 대비 3400억원 늘어난 10조1447억원 규모였다. PEF 등록 숫자도 5개 늘어났다.
올 상반기 내로 펀드 모집을 완료하고 금융감독원에 등록할 예정인 PEF 규모도 최소 3조원대 이상으로 추산된다. 토종 PEF인 IMM PE, VIG파트너스(옛 보고인베스트먼트그룹), 스틱인베스트먼트, 스카이레이크인베스트먼트, IMM인베스트먼트 등이 새 펀드를 결성했거나 준비 중이다.
바이아웃(경영권 인수 후 기업가치를 높여 되파는 것)을 주로 하는 PEF가 전성기를 맞고 있는 것. 현금을 가득 쌓아둔 사모펀드들이 불황이 내려준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지난해 기준 국내 M&A 시장의 총 거래대금은 역대 최대 규모인 약 45조원, 거래건수는 320건에 달했다. MBK파트너스는 영국 테스코로부터 홈플러스를 약 7조2000억원에 인수, 국내 M&A 역사상 최고액을 기록했다. 국내 PEF인 한앤컴퍼니는 비스테온으로부터 한온시스템(舊 한라비스테온공조)을 약 3조9000억원에 사들였다.
한국기업지배구조원 안세완 연구원은 "구조개편을 위한 대기업 간 빅딜과 사모펀드의 약진에서 비롯됐다"고 말했다.
IB업계 한 관계자는 "사모펀드가 금융시장 환경 악화의 또다른 돌 파구가 될 수 있다"면서 "그러나 사모펀드 시장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회수시장의 발달이 필수적이다"고 말했다.
한편에선 자칫 개미들이 '머니 게임'의 희생양이 될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또 다른 관계자는 "최근 신흥시장에서 자금 회수가 어려워지면서 사모투자거래가 감소하고 있고, 자금조성에 성공한 펀드 수가 몇 년 안에 크게 줄 것으로 예측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