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 병. 림 : 작가, 카타르항공 객실 사무장, K-MOVE 중동 해외취업 멘토, :「아랍항공사 승무원 되기」,「서른 살 승무원」,「매혹의 카타르」저자
"서라벌 밝은 달에, 밤들이 노니다가, 들어와 자리를 보니, 다리가 넷이어라, 둘은 내 것이고, 둘은 누구의 것인고, 본디 내 것이다마는 빼앗거늘 어찌 하리꼬."
신라의 향가인 '처용가'다. 일연의 '삼국유사'와 '악장가사', '악학궤범'과 같은 고려 속요에도 처용가는 빠짐없이 기록되어 있다. 역신에게 아내를 빼앗긴 현장 앞에서도 분노하기는커녕 태연히 춤을 추는 처용의 모습을 보고 역신이 오히려 흠씬 놀라 달아났다는 이야기다. 그로부터 사람들은 역신을 막기 위해 처용의 얼굴이 담긴 그림을 집 앞에 걸어두었다. 처용은 깊은 눈에 눈썹이 매우 짙고, 우람한 체격의 아랍인이라는 설이 있다. 신라의 수도였던 경주 괘릉 앞에도 아랍인의 외모를 빼닮은 무인석상이 버젓이 자리하고 있다.
신라는 실크로드의 끝에 자리한 나라로 8-9세기에 걸쳐 지금의 이란인, 페르시아와 활발히 교역하며 찬란하고 아름다운 문화를 꽃피웠다. 다양한 문화를 거침없이 끌어안고 새로운 시대를 마음껏 꿈꾸었던 신라인들의 개방적이고 진취적인 성향이 이루어낸 낸 문화인 것이다. 1998년에 이란학자가 구전으로만 떠돌던 설화를 모은 책 '쿠쉬나메'에는 멸망한 페르시아 왕자가 실크로드를 따라 중국으로 피신했다가 마침내 신라에 이르러 신라공주와 결혼까지 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들이 낳은 아들이 후에 빼앗긴 페르시아 왕조를 되찾아 영웅이 되었다는 설화는 이란과 오만 일대의 아랍인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다. 용의 아들로서 신라공주와 결혼한 걸로 전해지는 '처용'이 바로 '쿠쉬나메'에 등장하는 페르시아의 왕자란 주장은 학자들 사이에서 아주 오랫동안 제기되어 왔다. 일천년 전 우리 민족은 일찍이 진취적으로 서역의 문물을 받아들이며 글로벌 경제와 문화를 선도했다. 왕실의 혼인으로 혈맹관계까지 이룬 것이 사실이라면 아랍과 우리 민족의 운명적 인연은 결코 단순한 교역관계로만 풀이할 수 없을 것이다.
최근 코트라가 이란무역진흥청과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린다. 특수시장, 이란의 경제, 무역, 연구 등 다양한 분야에 높은 기술력을 지닌 우리 기업들이 진출해 마음껏 교류하며 일천년 전 실크로드 여행을 불러올 수 있게 되었다. 이른 바 '이란특수'가 제 2의 중동 붐을 일으킬 것인지 사뭇 기대가 앞선다. 서역문물을 향한 높은 포용력으로 찬란한 경제와 문화를 꽃피웠던 신라인의 기개가 더없이 필요한 시기다. 아름다운 신라의 모습을 한반도 가득 메우는 일은 이제 우리의 의지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