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희영의 브랜드만들기 5편- 마켓오 2부
작은 식당으로 시작했지만 마켓오를 만들 때 나는 대기업과 손잡고 유제품, HMR, 그리고 나아가서는 슈퍼마켓을 꿈꿨다. 특히 1인 가족, 실버 세대가 메인이 되는 시대에는 가정식을 대체할 수 있는 반조리, 완조리의 Meal Box 형태의 HMR(Home Meal Replacement)이 트렌드가 되리라 생각했다. 당시, 마켓오 레스토랑을 오리온의 외식계열사인 롸이즈온에 매각하며 오리온으로 입사할 때는 흡사 다른 가문에서 낳은 아이를 데리고 시집가는 심정이었다.
막상 부잣집 며느리가 되는 줄 알고 시집을 갔더니 그 집 큰 아들인 베니건스가 시들시들한 상태여서 내 아이인 마켓오를 키워 달라는 말은 꺼내기도 힘들었다. 오히려 이 상황에 애까지 데리고 시집 온 나는 바늘 방석이었다. 많은 사람들은 내가 오리온에 입사할 때부터 모든 권한을 받은 줄로 오해하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대기업의 구조나 조직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입사 직 후 나는 나의 꿈을 펼칠 기회를, 내 상사들에게 인정받기 위해 무엇부터 어떻게 해야 할까를 처절하게 고민했다.
오리온에서 첫 프로젝트는 베니건스 압구정점을 리노베이션해 복합화를 시도한 프리미엄 파머스 베니건스(Farmer's Bennigan's)와 마켓오 델리(Market O Deli) 레스토랑이었다. 약속한 월 3억 매출을 첫 달부터 6억으로 마감하며 오리온 그룹에서 내 존재를 알리기 시작했고, 그 후 1년간 베니건스 브랜드 리노베이션과 마켓오 복합화에 매진할 즈음 드디어 나의 운명을 바꾸는 전화 한 통을 받게 되었다.
"노희영 씨, 나 이화경입니다. 월요일 점심시간돼요. 식사합시다."
당시 이화경 사장님과 담철곤 회장님은 가끔 매장에 들렀지만 수고한다는 눈 인사 정도만 해왔던 터였다. 입사한 지 1년 되는 날, 이화경 사장은 나에게 전적으로 이 업을 맡아서 해 보라고 권유했다. 나는 그런 엄청나고 어려운 자리는 못한다고 손사레치니 '그럼 오리온에 온 이유가 무엇이고 꿈이 무엇이냐'고 되물었다. 그 때 내 대답은 "사장님, 전 마켓오를 초코파이 같은 제 2의 국민 브랜드로 만들고 싶습니다" 였다. '어떻게' 라는 질문이 이어졌고, 나는 엄마들이 믿고 아이들에게 사줄 수 있는 그런 프리미엄 과자를 만들어 보고 싶다고 답했다. 그 말이 끝나자 마자 내 인생 첫 메가히트 상품인 마켓오 과자를 만드는 기회를 갖게 됐다.
오리온에서 담당한 첫 프로젝트인 파머스 베니건스와 마켓오 델리 매장
무작정 새로운 과자를 만들겠다는 원대한 꿈으로 무장한 나와 몇십년 과자만 만들어 대한민국을 넘어 중국, 베트남에 까지 성공적으로 진출해있던 과자 1등 회사 임원들과의 첫 미팅은 만만치 않았다. 미팅 시작과 동시에 날아오던 내가 알아 듣지도 못하는 수많은 질문들…. 공장가동률, 폐유문제, 기타 여러 공장 관련 이슈들까지. 이어지는 질문에 나의 답은 계속해서 '모릅니다', '생각해 보겠습니다. 지금부터 해봐야죠'였다. 그 때 임원들의 아연실색한 표정은 지금도 생생하다. 그리고 그렇게 무식했던 나에게 그럼에도 기회를 준 그들이 없었다면 대륙(중국)을 열광시키는 마켓오 브라우니는 태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과자 브랜드 마켓오의 탄생비화는 이렇게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