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직장인 김걱정 씨(38)는 최근 눈을 질끈 감고 연금저축과 변액보험에 가입했다. 병치레에 대비해 들어둔 실손의료보험까지 따지면 가입한 보험 상품만 3개나 된다. 김 씨는 "당장 생활이 조금 쪼들리더라도 노후를 생각하면 꾸준히 돈 나올 젖줄이 있어야 한다"며 "워킹맘인 아내도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 등을 통해 자금을 운용할 예정이다"고 말했다.
노후, 은퇴생활과 관련성이 높은 보험과 연금자산이 1000조원에 육박하고 있다. 고령화 사회 진입 이후 가계 자산구성이 노후 생활에 좀더 맞게 변화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노후자산이 지나치게 안전자산 중심으로 구성됐을 때 자산증식 속도가 더디게 나타나 자칫 물가 오름세마저도 따라가지 못해 오히려 자산의 실질가치가 축소될 위험이 있다"고 우려한다.
◆고령화사회…가계 자산, 연금·보험 늘어
22일 한국은행 통계를 보면 지난해 9월 말 현재 가계 및 비영리단체(이하 가계)의 보험과 연금 자산은 970조2246억원이었다.
전체 금융자산 3080조5309억원의 31.49%를 차지하는 규모다.
보험과 연금은 2012년 말 717조1334억원, 2013년 말 812조4427억원에서 2014년 말 900조원을 넘어서는 등 연간 약 100조원씩 불어나고 있다.
노후를 위한 안전판 확보에 대한 인식이 커진 만큼 지난해 말 통계가 나온다면 1000조원을 넘어설 가능성도 있다.
가계의 전체 금융자산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2012년 말 28.5%에서 지난해 3·4분기 31.49%로 약 3.0%포인트 상승했다.
보험과 연금에 가계의 돈이 몰리고 있는 것은 고령화가 가파르게 진행되면서 노후 대비에 대한 필요성이 높아지고, 세제 혜택도 노릴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연말정산 파동 이후 절세효과를 누릴 수 있는 상품으로 돈이 몰리는 현상이 뚜렷하다.
지난해부터는 연금저축보험에 개인형퇴직연금(IRP)을 합쳐 연간 납입보험료의 700만원(연금저축은 400만원 한도)까지 세액 공제 혜택이 늘어났다. 700만원을 꽉 채워서 넣으면 연말정산 때 92만4000원(13.2%), 연 급여 5500만원 이하 근로자는 115만5000원(16.5%)을 돌려받는다.
예금에도 돈이 몰렸다.
단기보다는 장기상품 선호 현상도 두드러졌다. 9월 말 단기 저축성예금은 563조2430억원으로 2014년 말보다 2조6475억원이 줄었다. 비중도 19.60%에서 18.28%로 떨어졌다. 반면 장기 저축성 예금도 같은 기간 390조6235억원에서 429조4340억원으로 늘었다. 비중은 13.53%에서 13.94%로 증가했다. 이는 시중에 마땅한 투자처가 없는 가운데 은행보다 상대적으로 고금리를 주는 제2금융권 예·적금 상품으로 가계의 자금이 흘러들어 갔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효율적 노후 자산관리 필요
보험과 연금자산이 늘어난 것은 100세 시대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시중은행 한 PB는 "연금자산은 노후생활을 지탱해 주는 가장 기본이 되는 자산이고, 실적배당형 자산은 물가를 헤지하면서 노후자산이 소멸되는 것을 막아주는 역할을 한다"며 "저금리가 기조가 고착화되면서 자산의 미래 실질가치를 보존하려는 성향을 보여 준다"고 말했다.
상대적으로 위험이 큰 주식(지분증권)이나 투자펀드 자산은 줄었다.
지난해 6월 말 625조8511억원까지 불었던 주식(지분증권)이나 투자펀드 자산은 9월 말 615조5776억원으로 줄었다.
'중위험·중수익' 금융투자상품의 인기도 시들해졌다. 9월 말 현재 금전신탁 자산은 53조3914억원으로 3개월새 2조8978억원이 빠져나갔다. 특히 파생결합증권 자산은 7조5151억원으로 6월 말 보다 8조4122억원이 감소했다.홍콩항셍중국기업지수(HSCEI)를 기초자산으로 하는 주가연계증권(ELS)의 대규모 손실 우려 때문으로 분석된다.
서동필 NH투자증권 100세시대연구소 연구위원은 '100세 시대 행복 리포트' 보고서에서 "100세 시대가 도래하면서 노후생활이 10∼20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길게는 40년 가까이 노후생활을 할 수 있는 상황에서 물가를 고려하지 않는 자산운용은 노후 말년에 노후자산이 소멸하는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