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영국계 투자은행(IB)인 바클레이즈은행과 증권 한국지점이 서울에서 완전히 철수한다고 발표했다. 고명섭 바클레이즈캐피털증권 서울지점 주식영업 대표도 최근 고객들에게 보낸 서한에서 "바클레이즈 본사에서 아시아 주식부문 비즈니스를 중단하기로 공식 발표해 한국 지점도 폐쇄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1977년 서울에 은행 지점을 내며 한국 시장에 진출한 지 39년 만이다.
호주중앙은행(RBA)은 최근 외환보유고 포트폴리오에서 원화 비중을 5%로 신규 편입했다고 발혔다. 미국 달러, 유로화, 엔화, 캐나다 달러, 중국 위안화, 파운드화에 이어 7번째 통화편입이다. 1월 말 기준으로 437억달러(53조9000억원)의 외환보유액을 보유하고 있는 호주는 이 중 5%인 약 22억달러(2조7000억원) 가량을 한국에 배정했다.
'골드만삭스인터내셔널은행 서울지점, 스코틀랜드왕립은행(RBS), 바클레이스 ….' 한국에서 철수하거나 사업을 축소하려는 외국 금융회사들이다.
한국시장에 짐을 싸는 표면적인 이유는 글로벌 경기 침체로 본사 차원에서 진행되는 글로벌 구조조정이다. 하지만 해당 회사의 국내 실적 부진이 직접적인 원인이라는 게 금융업계의 지배적인 분석이다. 글로벌 기업들의 '엑소더스 코리아'가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다른 한편에선 외국인 투자자가 한국 증시에서 왕성한 식욕을 자랑한다.
◆구조조정?… 한국시장 적응 실패?
지난 23일 오후 6시 30분. 서울 여의도 서울국제금융센터(IFC서울) 지하 쇼핑몰. 이곳은 여의도 증권가 직장인들로 북적였다. 지하 3층 '○○국숫집' 앞은 사람들이 줄을 길게 늘어서 있었다. 직장인 이상현 씨(29)는 "1주일에 두세 번은 들른다. 비즈니스 미팅이나 점심 식사는 물론 영화관까지 있어 저녁 여가까지 보낸다"고 했다.
지상부 오피스동은 을씨년스러울 정도로 초라한 모습이었다. 이날 기자가 찾은 이곳은 건물 3동 중 한 동이 아예 불이 꺼진 채 적막했다. 대형 외국계 금융사 유치는 고사하고 빈 사무실을 채우기도 버거운 것으로 전해진다.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골드만삭스는 은행 부문 국내법인인 골드만삭스인터내셔널은행 서울지점을 없애고 해당 업무를 골드만삭스증권 서울지점에 넘기기로 결정했다. 유럽 대형은행인 UBS도 금융당국에 외국계 은행 지점 라이선스를 반납하고, 국내 은행 부문의 인력 구조조정을 추진 중이다. 영국 스코틀랜드왕립은행(RBS), 영국 바클레이스 등 외국계 금융사들이 수익성 악화로 한국 사업을 정리하기로 했다. 올해 들어서만 벌써 4곳이다.
독일계 알리안츠생명이 주인을 기다리고 있고, 영국계인 PCA생명도 매각설이 돌고 있다.
한국시장에서 발을 빼는 이유는 돈이 안되기 때문이다.
철수설이 끊이지 않는 스탠다드차타드(SC)은행도 실적 부진이 빌미를 제공하고 있다. 한국기업평가는 SC은행의 지난해 4·4분기 특별퇴직 비용을 반영한 손익이 전년에 이어 적자를 기록, 3000억원 가량의 당기순손실을 낼 것으로 추정했다.
틀에 밖힌 규제도 문제다. 방효진 DBS은행 서울지점장은 최근 'FSS SPEAKS 2016'에서 "국내사와 외국계에 하나의 규정을 적용하기보다는 모국의 규정에도 맞춰 운영하는 기업인 외국계 금융사에 차별화된 규정이 적용됐으면 한다"며 "그것이 금융 경쟁력의 제고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외국계 금융사의 잇단 한국 철수로 한국 금융시장은 '글로벌 금융사의 무덤'이라는 지적까지 나온다.
외국계 제조 및 서비스 업체들도 발을 빼고 있다.
AIG는 IFC 오피스타워 3개동과 콘래드서울호텔 매각을 추진중이다. 북미 지역에서 인기가 높은 캐나다 SPA 브랜드 '조프레시(Joe Fresh)'는 국내 진출 2년 만에 한국 시장 철수를 논의하고 있다. 지난해 10월에는 테스코가 홈플러스를 매각, 16년만에 한국시장을 떠났다.
더 깊은 뿌리는 한국 경제의 구조적 요인도 무시할 수 없다.
"한국은 느리게 가는 자전거다. 그만큼 균형잡기가 힘들다. 저성장 기조에서 한국의 성장 및 수익창출 모델의 취약함이 그대로 노출된 상태이다." 최원식 맥킨지 서울사무소 대표는 '맥킨지 코리아 포럼'에서 한국경제의 현 상황을 이같이 묘사했다.
◆외국인 한국 상장사 폭식
한국 증시에서 외국인이 한국주식을 '폭식'하고 있다. 23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외국인은 최근 한 달 동안 3조5000억원 가량을 순매수했다.
지난해 11월 이후 1월 까지 8조1000억원 가량을 팔아치웠다는 게 미끼지 않을 정도다.
외국인 투자가 반갑지 만은 않다.
"글로벌 자금시장이 조금이라도 경직되면 한국에서 자금을 빼내는 등 한국이 현금자동인출기(ATM) 역할을 하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2008년 금융위기(258억달러 이탈)는 우리에게 적잖은 교훈을 준다.
국제금융센터 안남기 연구원은 "2010년 이후에는 짧게는 1~2개월 마다 바뀌는 등 방향전환이 빈번하다"면서 "유로존 재정위기, 미국 신용등급 및 정치갈등, 중국 등 신흥국 불안, 지정학적 위험, 주요국 통화정책 기대의 잦은 변화 등 돌발적인 이벤트를 모니터링 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