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상선 채권단이 29일 현대상선 제1차 채권금융기관협의회에서 현대상선이 지난 22일 신청한 채권금융기관 공동관리 절차 개시를 의결했다. 사진은 현대상선이 위치한 서울 종로구 현대그룹빌딩 모습./뉴시스
[메트로신문 정은미기자] 현대상선이 조건부로 자율협약(채권단 공동관리)에 들어갔다. 이로써 현대상선은 3개월의 시간을 벌게 됐다.
그러나 용선료 조정과 사채권자 등의 채무재조정 동참이 자율협약 추진의 선결 조건인 만큼, 하나라도 무산될 경우 자율협약은 종료되고 현대상선은 법정관리로 돌입한다.
현대상선 채권단이 29일 현대상선 제1차 채권금융기관협의회에서 현대상선이 지난 22일 신청한 채권금융기관 공동관리 절차 개시를 의결했다.
자율협약은 채권단 100% 동의로 개시되는 만큼 채권단 내부에서 별다른 이견이 없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자율협약에 들어가면 채권단은 채권의 원금과 이자를 3개월 동안 유예하고 출자전환을 포함한 채무재조정 방안을 수립하게 된다.
채권 규모는 1조2000억원 수준이다. 다만 고액 용선료 인하와 회사채 만기 연장 동의를 받아야 하는 조건부 형태이기 때문에 이 중 하나라도 무산되면 현대상선은 법정관리 절차를 밟게 된다.
즉, 용선료가 인하되면 채권은행은 물론 선주와 사채권자 등 전체 이해관계자의 채권을 조정해 일부는 출자전환하고 나머지 채권에 대해서는 금리와 만기조건을 완화시켜주지만, 이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으면 현대상선 자율협약은 백지가 된다.
채권단 관계자는 "이번 자율협약은 이해관계자(용선주, 사채권자 등)의 동참을 전제로 한 조건부 자율협약"이라며 "이 중 하나라도 협상이 무산될 경우 자율협약은 종료될 예정"이라고 말했다.
현대상선은 지난 2월부터 유럽지역에 용선료 협상단을 파견해 선주들과 용선료 인하협상을 벌이고 있다. 해마다 수조원씩 지급되는 용선료를 인하해 줄 것을 요청하고 있는 것.
이번 협상에서 현대상선은 현재 시세에 비해 높은 용선료를 깎는 대신, 선주가 향후 현대상선의 주주가 될 수 있는 안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초 해외 선주들도 건조 당시 빌린 돈의 이자를 물어가며 배를 보유한 데다 다른 선사들과의 형평성 문제도 있어 용선료 인하가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우세했다. 그러나 현대상선이 무너질 경우 업황 부진으로 배를 빌려줄 다른 선사를 찾기 어려울 것이란 분석이 제기되면서 해외 선주들이 인하 협상에 전향적인 자세를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각 용선주별로 자세한 인하율은 정해지지 않았지만 예상하는 용선료 할인폭은 20~30%다. 용선료 협상 결과는 4월쯤 정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용선료 인하협상 결과가 긍정적일 경우 만기연장에 부정적이던 사채권자들도 입장을 바꿀 것으로 보인다.
앞서 현대상선은 지난 17일 사채권자 집회에서 다음달 7일 만기되는 1200억원 규모 공모채의 3개월 만기 연장에 실패했다. 신협은 지난 23일 기자간담회를 통해 단위조합에서 갖고 있는 현대상선 채권 290억원의 만기연장 및 출자전환을 거부한다는 뜻을 밝혔다.
그러나 현대증권 매각을 비롯한 현대상선의 자구안이 진행되고 용선료 협상이 진척을 보인다면 회사채 채권자들의 태도도 변할 것으로 채권단은 보고 있다. 구조조정이 틀어져 채권 액면가액의 10분의 1에도 못 미치는 청산가치 금액을 받는 것보다는 구조조정의 틀을 유지하는 게 낫다고 판단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채권단 관계자는 "사채권자들의 반대가 적지 않지만, 자율협약 개시와 용선료 인하 등이 현실화되면 사채권자의 입장도 달라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