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노무라증권은 지난 2008년 9월 파산한 리먼브러더스의 아시아·유럽 지역 사업부문을 먹어치웠다. 2008년에는 인수 부담으로 7000억엔이 넘는 적자를 봤다. 하지만 노무라는 인수합병(M&A)을 통해 단숨에 글로벌 금융투자회사로 도약했다. 2015회계연도 2·4분기(7~9월)에만 466억엔(약 4406억원)에 달하는 순이익을 냈다.
일본에 노무라가 있다면 한국에는 농협금융지주가 있다. 농협금융은 지난 2014년 우리투자증권을 사들여 한국판 '노무라'로 키워냈다. 지난 한 해에만 165%가 넘는 이익 증가로 업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특히 농협금융의 우리은행 인수합병(M&A)에서 보여준 전략은 '신의 한수'로 회자되고 있다. 알짜 기업들 저렴한 가격에 사서 지주의 한 축으로 만든 것.
김용환 NH농협금융지주 회장의 리더십과 김원규 NH투자증권 사장의 경영 노력이 보여준 결과라는 평가다.
◆농협금융, M&A는 이런 것
2014년 4월 14일 서울 중구 회현동 우리은행 본사. 우리금융 이사회는 우투증권 패키지를 농협금융에 매각하는 절충안을 승인했다
우투증권 패키지는 우투증권에 우리아비바생명, 우리금융저축은행을 묶은 것이다.
농협금융은 당초보다 10% 할인된 1조500억원에 우리투자증권을 품에 안았다.
우리금융 이사회가 이날 오전 우투증권 패키지 매각을 승인함에 따라 농협금융은 오후 6시께 이사회를 열어 '딜 클로징(거래 종료)'을 선언한다.
당시 농협증권은 자기자본 규모 8782억원으로 업계 13위에 불과하나 우투증권(자기자본규모 3조4729억원 2위·자산규모 1위) 인수로 자기자본 4조3511억원을 기록, KDB대우증권을 제치고 단숨에 업계 1위로 올라섰다.
우리투자증권 하나만 놓고 보면 9467억원의 돈으로 3조4729억원을 손에 넣은 것이다.
농협금융이 사들인 지분은 37.9%로 주당 1만2552원이다. 주가순자산비율(PBR)은 0.79배 수준이다.
후일담이지만 값싸게 사서 알짜 증권사로 키워냈다는 평가다. 금융투자(IB)업계 한 관계자는 "M&A의 기본 중 하나는 가장 싼 가격에 사들이는 것"이라며 "그 다음이 기술과 노하우를 흡수해 자기 것으로 만드는 것이란 점에서 농협금융이 우리투자증권 인수 후 보여준 경영전략은 업계의 모범 답안이다"고 말했다.
최근 두 건의 M&A가 이를 잘 말해 준다. 현대그룹과 매각주관사인 EY한영회계법인이 지난 3월 29일 현대증권 인수 제안서를 심사한 결과 KB금융은 모두 1조원 안팎의 인수 가격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증권 매각 대상 지분(22.56%) 시가(3580억원)의 3배에 달하는 액수다. 현대증권 매각 대상 지분은 22.6%(5338만410주)로 1조원이라 치더라도 주당 1만8000원대의 인수가격이다.
미래에셋은 지분 43%를 총 2조3205억원에 대우증권을 샀다. 주당 1만6519원 가량이다.
◆NH투자증권의 오늘과 김용환 회장의 리더십
시장에서는 '승자의 저주'가 될 것이란 시셈 어린 평가가 있었다.
증권업계가 깊은 침체에 빠져 있는 상태에서 덩치만 키울 뿐, 사업부문에서 특별히 시너지를 낼 부분이 없다는 회의적인 시각이 있었다. 또 두 증권사가 이미 금융지주 산하에 있으면서 계열 은행을 통한 연계영업을 충분히 하고 있으므로 합병으로 새롭게 더해질 것이 별로 없다는 이유에서다.
3년 차 NH투자증권은 시장의 우려가 단순히 기우였음을 보여주고 있다.
NH투자증권의 지난해 연결 기준 당기순이익은 2150억6600만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65.2% 증가했다. 같은 기간 매출은 7조46억원으로 45.1% 늘었고 영업이익은 3141억2200만원으로 전년 대비 150.4% 증가했다.
김 회장의 비금융 부문에대한 공격적인 경영과 CEO 선임 안목이 주요했다는 평가다. 임종룡 전 회장(현 금융위원회 위원장)이 만든 터에 나무를 심어 알알이 영근 열매를 수확한 것.
그는 신년사를 통해 "정부의 자본시장 활성화와 연계해 자산관리(WM), 기업투자금융(CIB), 글로벌 펀드상품 등 자산포트폴리오의 역량을 강화해 고객 요구를 만족시켜야 한다"고 먹거리 확대에 올인 정책을 펴고 있다. 그는 생각하고 그에 따라 실천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는 뜻의 '불려호획(弗慮胡獲) 불위호성(弗爲胡成)'이란 서경(書經) 구절을 인용하면서 "문제를 극복해 가며 끊임없이 실천해 나가자"며 큰 형님의 리더십을 보여주고 있다.
은행보다 비금융부문을 통해 수익을 확대하는 게 김 회장의 목표다.
김원규 NH투자증권 사장 보다 뒤늦게 농협금융에 승선한 김 회장은 그에게 모든걸 믿고 맡겼다.
김 대표는 우리투자증권 전신인 LG증권에 입사해 사내 최초로 사원 출신 대표이사에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로 증권업 전반에 대한 풍부한 경험과 통찰력, 조직을 아우르는 통솔력을 두루 갖추고 있다는 평가다. 최근 증권업 불황에도 기업금융(IB)ㆍ트레이딩ㆍ법인영업 등 3대축 강화 전략을 통해 경영실적을 크게 개선하는 등 최고경영자(CEO)로서 능력도 인정받고 있다.
정중호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연구분석실장은 "금융지주회사 내 자회사들은 각각 다른 법인이지만 실제 운영에 있어서 하나의 실체로 움직여야 그 기능이 제대로 발휘될 수 있다"면서 "이러한 경제적 동일체이론은 미국, 일본, 유럽연합(EU), 독일 등에서 상당히 폭넓게 인정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고 말했다. EU의 복합금융그룹지침(Financial Conglomerate Directive)이 대표적인 예이다.
성장의 몫은 주주들에게도 돌아갔다.
NH투자증권은 지난 2014년 160원이던 주당 배당금을 지난해 400원으로 2배 이상 늘렸다. 총 배당금이 1206억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