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경한의 시시일각] 취업률에 눈 먼 정부, 붕괴되는 상아탑
예술이나 철학이 사라진 대학, 참된 진리와 삶의 가치를 가르치지 못한 대학에서 배출된 인간은 어떤 모습일까. 사유는 희미해지고 사고는 미약하며 사물과 자연, 인간의 본질에 대해 질문하지 않게 될 것이다. 성숙한 비판적 미래는 망상에 불과해질 것이 자명하다. 허나 우리네 정부와 대학은 그 무참한 길을 기꺼이 걷고 있다.
요즘 대학을 두고 '학문의 전당'이요 '상아탑'이라 부르는 이는 없다. 그보단 '취업인력양성기관'이자 대기업에 인력을 송출하는 새로운 형태의 '하청업체'라는 게 알맞다. 아니 '프라임사업(산업교육연계활성화선도대학)'과 같은 정부의 투전판을 기웃거리느라 자신들의 역할까지 내팽개친 '이익집단'이라는 게 옳다.
실제로 동시대 대학들의 목표는 학문의 순수이념 지향과 교육이 아니다. 연구와 진리탐구를 통한 참된 지식인 배양과도 거리가 멀다. 그들이 매달리는 건 오로지 '취업률'이다. 기업이 필요로 하는 직장인을 공급하는 게 최대의 선이다.
대학에서 취업률을 최고의 사명으로 삼았다는 건 대량소비·대량생산 시대에서 사람마저 하나의 구조적 소비물로 인식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또한 기업을 주주로 상정한 채 상품을 조달하는 자발적 도급의 위치에 서있음을 뜻한다. 여기다 대고 자유와 자발성을 통한 교육과 연구의 일치를 이루는 대학, 사회적·문화적 공기로써의 대학을 주문하는 건 우둔하다.
그런데 대학을 이 지경으로 만든 건 정부다. 교육부가 재정지원을 이유로 대학평가를 하는데 있어 최우선 고려대상이 취업률인데다, 최근 커다란 논란을 불러온 프라임사업 역시 그 핵심은 취업률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여러 대학들이 '올바른 인재=취업'이라 착각하는 것도 어찌 보면 이상하지 않다.
그렇다고 인문사회, 예술 등 애초 취업과 무관한 학과에마저 통폐합과 폐과라는 끔찍한 칼질을 해댐으로써 교육의 다양성을 변탈하고, 창의적 인재발굴의 책임을 자발적으로 내려놓는 비탄한 현실이 합리화될 순 없다. 학교교육에 시장원리를 도입시키는 개념 없는 정부나 당장 눈앞의 돈에 어두워 획일적 인간상을 찍어내는 대학을 관용의 시각으로만 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한국 고등교육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는 점에서 천번 만번 욕을 먹어도 싸다.
문제는 이런 상황이 지속될 것이라는 우려다. 왜냐하면 대학 본연에 대한 고찰이 우선되어야 대학지배구조의 혁신적인 패러다임을 생성할 수 있지만 기업경영식 운영에 목매는 현재로선 개선을 기대하기란 요원한데다, '대학은 학문의 요람'이라는 사회적 의식이 해체되는 한 양식적 평가를 앞세워 간섭해온 정부 정책에 대한 저항이 불가능한 탓이다.
담론의 학풍과 도야의 길을 외면한 채 출세 지향적 교육관을 조성하고, 지식생태계와 기초학문이 말살된 곳에서 참다운 자아실현, 최소한의 휴머니티를 기대하는 건 무리다. 높은 연봉과 세속적 신분 상승만을 목적으로 하는 대학에서 한 국가의 동량지재(棟梁之材)를 바라는 건 어불성설이다. 더구나 기업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무궁한 상상력과 발상의 동력을 지닌 인문사회 및 예술의 싹을 잘라낸다면 문화강국이라는 꽃은 절대 피울 수 없다.
하지만 정부와 대학은 '취업률'이라는 미명 아래 학생 교육권 침해를 넘어 기초학문과 순수예술을 임의로 축소 및 파괴하는데 주저하지 않고 있다. 기업의 시녀를 자처하며 시장자본주의를 학내로 끌어들이느라 혈안이 되고 있다. 다들 제정신이 아니다.
※홍경한은 미술평론가이자 칼럼니스트로, 대림미술관 사외이사, 부산비엔날레 집행위원, 박수근미술관 자문위원 등을 맡고 있다. 월간 미술세계 편집장을 거쳐 퍼블릭아트 편집장, 경향아티클 편집장을 역임했으며 국립현대미술관 자문위원, 서울시립미술관 전시평가위원, 경향신문 고정 칼럼니스트 등으로 활동했다. 지금은 KBS라디오를 비롯한 여러 방송과 강의, 주간경향, YTN, 메세나, 모닝캄, 대우증권 등 다양한 매체에 고정적으로 문화예술관련 글을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