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기업들은 한국 시장을 테스트마켓이라 부른다. 트렌드에 민감하고 새로운 제품에 흥미가 높은 얼리어답터가 많기 때문에 신제품을 가장 먼저 선보일 국가로 주저없이 한국을 택한다.
'한국에서 통하면 세계에 통한다'는 속설이 글로벌기업들에게는 정석으로 여겨지는 듯하다. 새로운 제품을 먼저 만날 수 있는 것은 일종의 특권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테스트마켓이어서 겪는 피해도 적지 않다.
옥시 사태가 대표적이다. 전세계 어디에서도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피해는 보고되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하다. 한국시장에서 처음 판매를 시작했고 위해성이 도마에 오르자 해외시장에는 제품이 출시되지 않아서다. 옥시를 비롯한 가습기살균제 제조사들에게 있어 한국은 테스트마켓이었다. 아니 좀 더 비하해 표현하자면 한국 소비자는 그들에게 실험용 쥐였다.
200여명의 사상자를 내고도 옥시는 한국에서 "위해성이 입증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검찰수사가 본격화되기 전까지 피해자들의 주장을 묵살해왔다. 옥시뿐만이 아니다. 대형마트들은 PB제품을 판매했지만 제조사가 아니란 이유로 옥시에게 책임을 전가하기 급급하다. 대형마트와 유통업체들은 지난주 일제히 "옥시 제품을 철수하겠다"고 발표했다. 옥시 불매운동이 거세지자 내린 조치다. 표면적으로만 보면 소비자의 요구를 수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면을 들여다보면 씁쓸함을 지울 수 없다. PB제품을 만들어 시장에 유통했으니 그들은 가습기살균제 사태의 공범이다. 공범이 자신의 죄를 면하기 위해 주범을 비난하는 꼴이다. 자신들에 대한 선처를 호소하기 위해 옥시로 비난의 화살을 돌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옥시 제품은 소비자들의 불매운동과 유통업체들의 판매중단으로 이제 시장에서 설 자리를 잃었다. 일각에서는 한국법인 청산 가능성마저 제기되고 있다.
이번 사태를 통해 글로벌 기업들이 한국 시장을 보는 시각도 달라졌다.
최근 만난 외국계 기업 임원은 "본사에서 한국 소비자의 살인가습제에 대한 분노를 앞으로 한국시장에 제품을 론칭할 때 반면교사로 삼겠다며 옥시와 관련된 기사를 번역해 보내달라는 요청이 왔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 뿐만 아니라 외국계 기업들이 이번 사태의 불똥이 튈까 노심초사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제 한국은 그들에게 더이상 테스트마켓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큰 실험실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