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양유업 전국대리점연합회 집회 현장에 등장한 노인일자리 관련 확인서.
'을'의 횡포에 속앓이를 하는 기업이 늘고 있다. 2013년 남양유업 사태에 이어 회장님들의 막말과 욕설 등이 언론에 잇따라 공개되면서 '갑의 횡포', '갑질' 이라는 단어가 반기업정서 확산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갑질 기업'이라는 낙인이 찍히면 불매운동까지 이어지기 일쑤다. 이런 정서를 역이용하는 '을'들이 등장해 횡포의 주체인 '갑'을 공포에 떨게 하고 있다.
갑의 횡포에 맞선다면 '을의 반란'으로 불리며 여론적인 지지을 얻을법 하지만 갑을 떨게하는 '슈퍼 을'들의 대응방식은 정작 과거의 갑의 횡포를 그대로 답습하는 식이다. 갑의 약점을 이용해 부당한 요구를 하거나 협박을 하는 등 도넘은 '을질'로 기업을 압박하는 것이 이들의 특징이다.
6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소비재 기업의 약점을 들춰내 부당한 요구를 하거나 계약조항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고 계약금액을 가로채는 속칭 '먹튀'까지 비겁한 '을'들이 늘고 있다.
남양유업법의 장본인인 남양유업도 '슈퍼 을' 앞에서 약자로 전락했다. 과거 '갑질'논란에 중심에 있던 기업이라 '을'에게 부당한 욕구를 당하고도 떳떳하게 드러내지 못하는 것이 남양유업의 속내다.
지난 2일 남양유업 본사 앞에서 열린 집회가 남양유업 속앓이의 근원이다. 이날 이창섭 전국대리점연합회 회장을 비롯한 50여명의 대리점주들이 상생협약이 지켜지지 않는다며 집회를 열었다. 모였다. 그러나 이 집회에 참석한 이들 가운데 대리점주는 이 회장을 제외하고는 없었다. 대부분은 노인 아르바이트생들로 채워졌다. 실제로 집회 현장에서 시위에 참여한 이들에게 전국대리점연합회 측은 '노인 일자리 및 사회활동 지원사업 활동비 현금지급 확인서'에 사인을 받는 장면까지 목격됐다.
노인아르바이트 사실이 알려지자 남양유업은 이 회장이 최근 회사측에 도매거래처 영업권을 보장해달라고 요구했다는 내용을 밝혀왔다. 동네슈퍼에 납품하는 도매거래처 영업권은 이미 2013년 4월 이회장이 다른 이에게 양도한 것이다. 자신이 판 영업권을 본사로부터 다시 돌려달라는 요구를 해왔다는 것.
남양유업관계자는 "상생협약후 대형마트 납품권을 보장해줬는데 자신이 매도한 도매거래처영업권을 본사가 다시 매수자에게서 빼앗아 줄 수는 없지 않냐"며 "필요할 경우 이 회장이 초기부터 회사에게 개인적으로 요구한 부당한 사항들을 관련 자료와 함께 공개하겠다"고 밝혔다.
지난달 열린 광주광역시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열린 광주창업프랜차이즈박람회에서도 유사한 사례가 발생했다. 전시컨벤션 사업의 경우 인기 박람회로 검증된 경우는 전시주최업체가 '갑'이지만 신생 박람회의 경우 통상 참가업체가 '갑'이다. 70개 기업 140개 부스가 참가하는 호남 최대 창업박람회라는 거창한 수식어를 믿고 다수의 프랜차이즈 기업들은 참가부스를 신청했다. 사흘간 열릴 예정이었던 박람회 현장은 한산하다못해 을씨년스러울만큼 관람객이 없었다. 직전에 열린 부산박람회와 비교해서 관람객은 10분의 1 수준도 안됐다는 게 참가기업들의 전언이다.
이 행사에 참가한 한 프랜차이즈 기업은 "마지막날에는 60개 참가업체 중 10곳 이상이 일찌감치 짐을 쌌다"며 "호남은 창업 불모지 중 하나여서 프랜차이즈들이 공을 들이는 지역인데 전시 주최업체가 우릴 유치하기 위해 허위로 행사를 과장한 게 아니겠냐"고 토로했다. 참가업체들은 행사장을 찾은 사흘간의 인원은 웬만한 창업박람회의 1시간 관람객 수준도 안되는 수백명 수준이라며 주최사에 법적 대응하겠다는 방침이다.
약자로 대표되는 프랜차이즈 가맹점들 사이에서도 을의 횡포가 발생하고 있다. 커피전문점A사는 점주의 사입으로 골치를 앓고 있지만 제재를 가하면 갑질로 비쳐질까 우려해 전전긍긍하고 있다. A사 대표는 "매출 상위 가맹점이라는 이유로 사입을 하고도 사입에 대해 제재를 가하려고 하면 '갑질'을 들먹이며 '법적으로 시비를 가리자'고 나온다"며 "매출 상위 가맹점이 앞장서 사입을 하니 다른 가맹점들도 슬슬 사입비중을 높이고 있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구이전문점 프랜차이즈 B사는 한때 100여개 이상 매장을 보유했지만 점주들의 조직적인 사입으로 현재 시장에서 자취를 감췄다. 돼지고기 프랜차이즈의 경우 월별 가격이 들쑥날쑥해 가격이 오를때는 본사에서 공급을 받고 내릴 때는 사입을 하는 경우가 특히 많다. 이 브랜드의 경우 점주들의 단체를 통해 사입이 만연해지면서 결국 문을 닫게 됐다. 본사가 사라지면 가맹점은 본사의 지원을 전혀 받을 수 없게 된다. B사의 을들은 갑을 무너뜨린 동시에 자신들이 운영하는 가맹점까지 공멸시키는 최악의 선택을 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