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거 E0에요?"
가구 매장을 방문했을 때 점원에게 한 소비자가 질문을 던진다. 사실 몇년 전만해도 가구에 사용하는 보드(합판, 파티클보드, 중밀도섬유판)의 포름알데히드 방출량을 따져 묻는 풍경은 보기 어려웠다.
소비자들이 왜 달라졌을까. 옥시 가습기 살균제 사건이 일으킨 파장 중 하나로 보는 시각이 강하다. 대형사고 때마다 지적되던 안전불감증은 어느새 안전과민증으로 변모했다. 세제나 샴푸 등 생활용품을 구입할 때도 뒷면의 전성분 표시를 확인하는 소비자도 늘고 있다. 그러나 무조건 화학성분이 없다고 안전하고 많이 함유했다고 위험하다는 편견은 금물이다.
가구의 이야기로 다시 돌아가보자. 소비자들이 친환경이라고 믿는 E0급에서도 포름알데히드는 방출된다. 다만 리터당 방출량이 0.5㎎ 이하로 바로 아래 등급인 E1급보다 3배 가량 낮은 수준이다. 그러나 E0가 최상은 아니다. 가구업체들이 몇년새 E1에서 E0로 주요 사용 보드를 교체하면서 '친환경 E0보드 사용'이라는 문구로 홍보를 한 탓에 다수의 소비자들에게 E0가 최상위 등급이라는 잘못된 인식이 자리잡게 됐다. E0보다 상위 등급인 SE0의 포름알데히드 방출량은 0.3㎎/ℓ에 불과하다.
그러나 SE0를 사용한 가구라고 해서 무조건 안전할까. 전문가들은 상당수 동의하지만 '무조건'이라는 수식어에는 주저한다. 이유는 뭘까. 가구는 보드로만 만들지 않는다. 보드 위에 도료로 도장을 하거나 필름지, 무늬목 등을 덧씌우는 랩핑을 통해 완성된다. 보드가 아무리 친환경 등급이라해도 도료, 무늬목, 필름이 유해물질을 함유했다면 포름알데히드와 휘발성유기화합물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반대로 이야기하자면 표면마감재가 보드의 유해물질 방출을 차단할 수 있는 기능성을 갖췄다면 E1 자재를 사용한 가구가 E0 자재를 사용한 가구보다 유해물질 방출이 적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생활용품도 마찬가지다. A샴푸에 보존제가 B샴푸보다 많다고 해서 A샴푸가 더 유해하다고 보긴 어렵다. 해당성분이 어느정도 양을 사용했을 때 유해성이 있는지, 인체에 누적될 가능성이 있는지를 먼저 따져봐야한다.
옥시 가습기 살균제 사건 이후 소비자들의 안전과민증이 극에 달했다. 그러나 '화학성분을 사용한 기업=나쁜 기업'이라는 공식은 다시한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한때 물티슈가 안전성 논란에 휘말린 적이 있다. 국내외의 시험결과 국내 물티슈는 화학물질이 어느정도 함유됐음에도 에코서트 인증 등 국제 친환경 기준에서 최고 등급을 받았다. 물티슈 사건으로 국내 제조 기업들은 경영상의 위기를 겪기도 했다. 만약 입증되지 않은 안전성 논란으로 이들 기업이 사라졌다면 우리는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물티슈를 더이상 사용할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