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형문의 세상읽기] 가계빚이 정말 무서운 이유
최근 한국은행이 가계부채 통계를 발표한 이후 우리나라의 가계부채 위험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다시 커지고 있다.
우리가 흔히 가계부채의 위험을 말할 때 자주 사용하는 지표가 가계부채의 증가속도, 가계의 부채상환능력, 그리고 취약계층의 가계부채 보유 비중 등을 가지고 판단을 하게 되는데 이 3가지 지표를 보면 모두가 걱정스럽다.
우리나라는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가계부채증가율이 여전히 소득증가율을 상회하면서 주요국 보다 높은 가계부채비율(소득 대비 가계부채비율)이 계속 상승하고 있으며 이에 따른 채무부담 증가로 가계부채의 위험이 커지고 있다.
소득계층별 가계부채 상황을 보더라도 임금근로자에 비해 경기변동에 따른 영향을 상대적으로 크게 받는 자영업자와 소득에 비해 많은 부채를 안고 있는 다중채무자(3개 이상의 금융기관부채 보유자)의 비중도 높은 편이어서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다.
2013년부터 시행해 온 정부의 가계부채종합대책(가계대출구조의 개선, 가계소득증대, 취약계층 지원, 주택시장안정 등)에 의해 아직까지는 주택대출상환에 별 문제가 없고 연체율도 낮아 가계부채 부실화로 인한 금융불안 발생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보이지만 우리가 안심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닌 것 같다.
가계빚이 정말 무서운 것은 예기치 못한 경제여건의 악화로 자산가격(부동산·주식 등)이 하락하면서 우리경제가 전반적인 디플레이션(물가하락) 상태로 들어가는 경우이다.
가계빚이 과도한 상태에서 경기상황이 나빠지고 이로 인해 금융기관들이 대출을 억제하거나 금융시장에서 자금회전이 잘 안될 경우(신용경색 발생)를 가정해 보자. 소득이 낮은 취약가계들은 부채상환을 위해 집을 급매물로 내놓게 될 것이다. 이러한 부채상환을 위한 자산매각 현상이 경기침체의 지속으로 일반가계까지 확산된다면 어떻게 될까.
자산가격의 급락과 일반 물가 하락으로 이어져 우리경제가 디플레이션 상태로 빠져들게 되고 이는 다시 가계의 실질채무부담을 추가로 증대시켜 자산의 급매도 확산 → 자산가격의 급락 → 금융기관의 부실자산 확대 및 부실화로 이어져 우리경제에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오는 무서운 부채디플레이션을 가져오게 된다.
우리경제는 지금까지 모든 경제현상을 다 겪어보았다. 두 자리 수의 금리, 높은 인플레이션, 만성적인 경상수지적자, 심지어 국가부도위기로 대규모의 금융기관 도태와 대량실업 등을 겪었다. 그러나 오직 한 가지 겪어보지 못한 것이 있다면 바로 이 자산가격 하락을 동반한 부채디플레이션이다.
일본이 90년대 자산가격 급락과 함께 심각한 디플레이션을 겪으면서 경제가 장기침체에 들어갔던 점을 우리는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지금 세계경제는 주요국들의 국가부채조정과 경제구조조정 등으로 당분간 저성장이 불가피한데다 브렉시트(영국의 EU탈퇴), 각종 테러 등에 따른 지정학적 리스크 등으로 불확실성이 매우 크다. 국내적으로는 조선, 해운, 철강업 등 대기업들의 구조조정으로 대량실업이 예상되고 있다.
우리가 가계빛에 대한 관리를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비록 현재 주택담보대출인정비율(LTV) 비율이 낮고 가계대출상환에도 큰 애로가 없어 자산 급매도로 인한 자산가격 하락과 이로 인한 부채디플레이션 발생 가능성이 낮다고 하더라도 우리나라는 가계의 부채규모와 채무부담정도가 높은데다 자영업자와 다중채무자 등 특정부문의 가계부채가 리스크 요인으로 잠재해 있기 때문에 가계부채비율을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가운데서도 예기치 못한 경제여건 악화에 따른 극단적인 상황까지도 대비하여 미리미리 대비책을 마련해둘 필요가 있다. /전 한국금융연수원장·메트로신문 자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