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택시 운전을 하는 박모 씨(45)는 올해 전세금을 올려달라는 집주인의 요구에 저축은행에서 3000만 원을 급하게 빌렸다. 그의 월급으로는 생활비도 빠듯했지만 월이자 30만 원을 꼬박꼬박 상환해왔다. 하지만 최근 어머니의 수술비가 필요해 다시 제2 금융권의 문을 두드려야했다. 그는 "어떻게 이자를 갚아야 할지 걱정이 앞선다"며 "불황으로 수입도 줄어 뾰족한 수가 없다"고 말했다.
#. 서울 마포에서 조그만 횟집을 하는 김모씨(49)도 은 최근 저축은행에서 급전 2000여만월 빌렸다. 콜레라 사건이 터진 후 장사는 안되는데 임대료, 직원들 월급을 조달할 길이 없어 금전을 빌렸다고 하소연 한다. 그는 "이대로 가다간 장사를 접어야할 판이다"면서 한숨을 쉬었다.
경기 침체로 저소득자들이 제2 금융권으로 내몰리고 있다. 전문가들은 저소득층이 '경기 침체→수입 감소→대출이자 부담 증가→연체'로 이어지는 덫에 빠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가계부채가 1300조 원을 육박하는 가운데 저소득 대출 취약계층이 대거 채무불이행 상태에 빠지면 파장이 심각해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저축은행 가계대출 '경고등' 켜졌다
11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7월 말 현재 전국 저축은행의 가계대출 잔액은 16조6920억원으로 전월보다 5924억원 늘었다.
월간 증가액이 6월(2349억원)의 2.5배 수준으로 확대됐고 한은이 통계를 내기 시작한 2007년 12월 이후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종전에는 작년 10월 5117억원이 최대 증가 폭이었다.
저축은행 가계대출은 올해 1∼7월 2조9984억원 늘면서 작년 말과 비교한 증가율은 21.9%로 집계됐다.
걱정은 저축은행 가계대출은 은행을 이용하기 어려운 저소득층이나 저신용층이 생계를 위해 빌리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한은 통계를 보면 지난 7월 저축은행의 평균 대출금리(신규취급액 기준)는 연 11.20%로 시중은행의 가계대출 금리(2.96%)의 약 4배 수준이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최근 저축은행 가계대출을 살펴보면 대부분 생계형 대출이고 개인사업을 위한 대출이 일부 포함된 것으로 파악된다"고 말했다.
은행보다 훨씬 높은 이자를 감당하면서 돈을 빌려야 할 정도로 생활이 어려운 가계가 많아진 것으로 볼 수 있다.
여기에는 경기 부진 등으로 실질적인 가계 소득이 정체된 현실이 반영돼 있다.
또 올해 은행권의 여신심사 가이드라인으로 대출수요가 2금융권으로 이동한 '풍선효과'가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 달에는 은행 가계대출에서 주택담보대출을 제외한 마이너스통장대출 등 '기타대출'이 2조5000억원 늘어났다.
이는 올해 1∼8월 월간 평균 증가액(약 9500억원)의 2.6배 수준이다.
기타대출 잔액의 증가 폭은 2010년 5월(2조7000억원) 이후 최대치이고 사상 두번째로 크다.
◆가계부채 최대 위험군은 '40대 저소득층 자영업자'
당장 부실 뇌관이 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 6월 말 현재 저축은행의 가계대출 연체율은 6.4%로 작년 말보다 0.4% 포인트 떨어졌고 은행의 가계대출 연체율도 0.31%에 머물렀다.
문제는 앞으로가 걱정이다. 미국의 금리 인상, 경기 악화, 부동산 가격 하락 등 곳곳에 위험 요인들이 널려 있다.
한국은해에 따르면 가계금융·복지조사 결과를 토대로 가계부채 위험군을 분석한 결과 작년 3월 말 현재 '한계가구'와 '부실위험가구' 양쪽에 모두 포함된 가구는 모두 54만 가구로 집계됐다. 가계부채에서 채무불이행 등의 위험성이 가장 큰 채무자는 '저소득층의 40대 자영업자'인 것으로 분석됐다.
가계부채의 급증세가 진정되지 않는 가운데 경기 회복 부진으로 소득 여건은 개선되지 않고 있어 정밀한 가계부채 대응책이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은행도 은행의 가계대출 연체율이 하락하고 있어 부실 가능성은 제한적이지만 경기 회복을 통한 소득여건 개선이 늦어지면 가계의 부채상환부담이 커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9월 한은이 기준금리를 내리지 않은 이유 중 하나도 가계부채였다.
한은 관계자는 "특히 부채가 과도하게 많은 가구나 저소득가구 등을 중심으로 부실이 늘어날 가능성이 있는 만큼 가계 소득증대나 부채구조 개선을 위한 노력이 확대돼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