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 게이트'가 아이러니하게도 공공기관의 '낙하산'을 막고 있다.
주요 기관장을 최종 임명하는 대통령이 관련 게이트로 검찰 조사를 앞두고 있는 등 국정이 마비되면서 인선이 대거 미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임기가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자리를 지키고 있거나 빈 자리를 채우지 못하고 있는 공공기관도 수두룩하다.
이런 가운데 박근혜 정부들어서 임명된 공공기관의 기관장, 감사, 상임이사 등 주요 임원의 경우 정치권 등에서 온 소위 '낙하산'은 5명 중 1명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됐다. 특히 기관장의 경우엔 10명 중 3명 꼴로 낙하산이었다.
공공기관 정책을 총괄하고 있는 기획재정부가 공공기관 개혁을 적극 추진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낙하산에 대해선 면죄부를 주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16일 공공기관 경영정보 공개시스템 '알리오'에 따르면 임기가 끝났는데도 계속해서 업무를 보고 있는 공공기관장은 22명에 이른다.
허엽 한국남동발전 사장, 조인국 한국서부발전 사장, 권혁수 대한석탄공사 사장, 이재갑 근로복지공단 이사장 등 12명은 이미 지난 9월 임기가 끝났다.
10월엔 허경태 산림청 녹색사업단장, 박구원 한국전력기술 사장 등 6명이, 이달 들어선 최외근 한전KPS 사장, 김영표 한국국토정보공사 사장 등 4명이 임기를 마쳤다. 그러나 후임이 정해지지 않아 계속 기관장 자리를 지키는 상황이다.
공석으로 아예 비어있는 기관장 자리도 있다.
한국석유관리원은 지난 3월 김동원 이사장이 임기 7개월을 앞두고 사임한 이후 8개월째 CEO 자리가 공석이다.
한국표준과학연구원은 권동일 전 원장이 보유주식 문제로 취임 4개월 만에 사직서를 내 1달째 수장 공백 사태를 맞고 있다.
임기를 1년 앞둔 시점에서 김승환 전 이사장이 돌연 사퇴해 '외압설'이 일었던 한국과학창의재단은 수장 자리가 두 달 넘게 빈 상태로 이사장 선출을 위한 재공모를 진행하고 있다.
한국과학기술평가원(KISTEP)의 경우 미래창조과학부가 박영아 원장의 연임을 불승인한 이후 박 원장이 거취가 불투명한 상태에서 계속 원장직을 수행하고 있다. 연말까지 기관장 임기가 끝나는 한국마사회, 도로공사 등 18곳의 인사도 순탄하지 않을 전망이다.
한국예탁결제원의 경우 유재훈 사장이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회계감사국장에 임명돼 한 달 정도 일찍 퇴임한 가운데 현재 임원추천위원회만 꾸려진 상태다. 다음 달 27일 임기가 끝나는 권선주 기업은행장의 뒤를 이을 인사도 관심사다.
한 금융 공공기관 관계자는 "최순실 게이트로 청와대가 힘을 잃어 공공기관장 선임 절차가 줄줄이 밀릴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며 "정치권의 낙하산 인사가 기웃거릴 수 없는 분위기가 된 것은 환영할만하다"고 말했다.
공공운수노조 산하 사회공공연구원이 이달초 펴낸 '박근혜 정부 4년, 공공기관 낙하산 인사의 실태' 자료에 따르면 현 정부 출범 이후 지난 9월30일까지 임명된 기관장, 감사, 상임이사, 비상임이사 등 임원은 총 1658명으로 이 가운데 낙하산으로 분류할 수 있는 인사는 18.3%인 303명에 달했다.
특히 기관장의 경우엔 새로 임명된 144명 중 29.9%인 43명이 낙하산에 속했다.
사회공공연구원 김철 연구실장은 "지난 대통령선거 과정에서 박근혜 대통령과 인연을 맺거나 박근혜 정부, 새누리당 등에서 주요 직책을 맡았던 낙하산 인사들이 상임감사로 대거 임명됐고 올해도 계속 임명되고 있다"면서 "특히 논란이 될 수 있는 주요한 정치 경력을 '알리오'상에서 은폐한 경우도 많았다"고 강조했다.
김 실장은 또 "박근혜 정부는 성과주의에 기반한 성과연봉제를 공공기관에 밀어붙이고 있지만 공공기관의 성과 저하는 사실상 낙하산 인사에 있다"고 꼬집었다.
한편 공공기관장은 보통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에 따라 주무부처 장관의 제청을 받아 대통령이 임명한다.
기관장 임기만료 두달 전쯤 임원추천위원회를 꾸린 뒤 공고→서류심사→면접심사를 거쳐 3∼5명의 후보자를 추린다. 주무부처 장관이 1명이나 2명의 후보자를 추려 대통령에게 제청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