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의 탕탕평평] (30) 칭찬할 수 없다면 침묵해라
김민 데일리폴리 정치연구소 소장(동시통역사, 전 대통령 전담통역관·주한 미 대사관 외교관)
세상살이에서 가장 어려운 것 중 하나가 인간관계이다.
더구나 요즘 같은 시대에서는 자신의 뜻과 부합되지 않는 타인을 서로들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세상의 모든 기준이 각자 자신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남이 나와 다를 수 있음을 인정할 때 비로소 협상이 되고 화합이 되며, 수준 있는 논쟁과 토론도 가능해진다. 그럼으로써 모두가 함께 더 나은 방향을 찾을 수도 있고, 역시 모두에게 더 유익한 방법을 알아낼 수도 있다. 그렇게만 된다면 좋겠지만, 쉽지 않은 세태이다.
세태가 그렇다보니 개인도 단체도 정치권력이나 경제계도 모두 마찬가지다.
당장 눈앞에 보이는 자신의 이익에만 연연하며, 남을 배려하려는 모습을 좀처럼 찾아보기가 어렵다.
가령, 누가 축하받을 일이 있을 때, 진심으로 축하할 수 있는 것이 정상적인 사람이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하지 않나. 상대를 인정하고 축하하기는커녕, 무엇 하나 꼬투리 잡을 것 없나 그런 상대의 단점이나 부족한 점만을 찾아내려는 부정적인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런 태도가 습관화 된 사람들에게는 그것이 얼마나 악(惡)한 것인지 자체를 인지할 수 있는 여력이 없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항상 누군가를 험담하며, 그들이 보이는 모든 언행에는 순수함을 찾아볼 수 없다. 지나치게 이기적이고 각박한 세상이다.
우리는 인간관계를 어떻게 정의할 수 있나. 가까이 지내는 것과 단지 그냥 아는 것은
천지(天地) 차이이다. 초중고를 함께 나오고 심지어 대학까지 함께 다닌 친구나 선후배가 있다. 항상 같은 공간에서 서로의 성장을 지켜보며 충분한 시간에 의해 만들어진 관계이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너무 편안한 관계이다. 그래서 때로는 언행을 잘못해도 서로 오해 없이 덮어줄 수 있는 사이기도 하다. 그런데 사실 그럴 정도로 가까운 관계에서는 상대를 함부로 대하는 법이 거의 없다.
오히려 어설프게 알고 있는 관계에서 서로에 대한 배려와 진심어린 소통이 원활하지 않는 것 같다. 필자가 이런저런 모임의 회원으로 있는 공동체나 단체가 많지만, 지방에서 다녔던 고등학교의 경우 예를 들어보면, 명확히 부류가 나뉘는 것을 알 수 있다.
당시 학급수와 학생들의 수가 많다보니, 같은 고등학교를 다닌 동기였어도 얼굴 한번 못보고 학창시절을 보낸 친구들의 숫자가 적지 않다. 아님 있었어도 유유상종(類類相從)이었을 것이다. 우등생은 우등생끼리, 예체능을 하는 친구들은 그들끼리, 한 마디로 좀 노는 친구들은 그들끼리의 유착관계가 있기 때문에 서로 잘 통할 수밖에 없다.
사회생활을 하고, 결혼을 하고, 어느 정도 중년이 되어가면서는 사실상 더 비슷한 사람들끼리 인간관계가 명확하게 형성되기 마련이다. 같은 눈높이에서 같은 주제를 가지고 비슷한 단어를 쓰면서 상대하는 것이 편하고 실용적이기 때문이다.
필자는 요즘 출신고교나 대학 선후배들로부터 많은 연락을 받는다. 대부분이 학창시절에는 별로 가깝지 않았거나 존재 자체를 몰랐던 사람들이다. 구태여 연락처를 알아서 연락하는 이유를 물어보면 그냥 만나고 싶어서라는 대답이 100%에 가깝다.
필자의 일이나 행보가 일반 직장인이나 자영업자와는 좀 다르게 방송을 하고, 칼럼을 쓰고, 강연을 하며, 여러 인지도 있는 유력인사들을 만나는 것에 그들은 호감을 갖는 것이다. 필자에게는 그것이 일이고, 생활일 뿐인데 말이다.
바쁜 세상에서 SNS를 이용해 보다 간편하게 하루하루 지인들의 일정이나 상황을 파악할 수 있는 세상이다. 구태여 자주 만나지 않아도 자주 만나는 것과 같은 효과를 내는 수단이기 때문이다. 시대가 그렇고 트렌드가 그러니 필자도 지나치지만 않으면 그 트렌드를 따라가고 있다.
허나 오픈된 웹상에서 별로 가깝지도 않은 사람이나 친구가 내가 힘들게 노력해서 얻어낸 결과물을 겨우 사진 몇 장만을 눈으로 보면서 이러쿵저러쿵 묘하게 시기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본인은 아니라고 하겠지만, 필자 역시 바보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웬만하면 진심으로 안부를 묻게 되고, 상대에게 축하할 일이 있을 때는 직접 가보지는 못해도 한 두 줄 진정성을 담아 마음을 표현하고는 한다.
그런데, 그 역시 내 맘 같지 않다. 내가 아는 가까운 사람들이 모두 볼 수 있는 공간에 묘하게 시기하는 글을 올리는 것 자체가 얼마나 치졸하고 추악한 일인가. 왠만하면 서로 격려와 칭찬을 해주는 것이 옳지 않겠는가.
어수선한 시국이지만, 정치도 역시 마찬가지다. 정당들도 자신과 정치이념이 다르면 무조건 부인하고 무시하는 것은 결코 옳은 정당의 모습이 아니다.
개인도 그렇다. 칭찬하기 어려우면 차라리 입을 다무는 편이 훨씬 자신에게도 유리하다.
그럴만한 사이도 아닌데, 무엇하러 오해를 불러 일으킬만한 표현을 일삼나 말이다.
서로를 칭찬하고 격려해라. 그게 어렵다면 그냥 침묵해라. 그것이 그나마 자신의 격을 가장 높이는 방법이며, 그나마 유연한 인간관계를 만들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시기보다는 인정을, 험담보다는 진심어린 충고를 해라.
그것이 세련된 인간관계이다.
데일리폴리 정치연구소 소장
(동시통역사 · 전 대통령 전담통역관 · 주한 미 대사관 외교관)
블로그 http://blog.naver.com/yumpie74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yumpie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