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르·K스포츠재단 기업 출연금이 뇌물?
검찰의 청와대 비선실세 최순실 관련 수사가 미르·K스포츠 재단 출연 기업으로 확대되고 있다. 53개에 이르는 대기업들이 양 재단에 기부한 출연금이 약774억원에 달한다. 이 출연금의 대가성 여부는 향후 최순실 정국의 새로운 뇌관이 될 전망이다. 만약 대가성이 있다고 밝혀질 경우 국내 주요 대기업 총수 뿐 만 아니라 현직 대통령까지 뇌물죄로 사법처리 할 수 있는 명분이 생기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재까지 밝혀진 사실만 놓고 보면 출연한 기업들이 혜택을 받은 사례보다 출연을 거부하거나 비협조적이었던 기업이 피해를 받은 사례가 훨씬 더 많다. 정부 정책에 협조한다는 명분 아래 울며 겨자먹기로 출연금을 낸 기업들이 검찰 수사로 다시 한 번 더 두드려 맞는 형국이다.
■ SK, 롯데 "총수의 대통령 독대와 재단 출연금 무관"
지난 24일 면세점 사업자 추가 선정 관련 특혜 의혹을 두고 검찰은 SK와 롯데를 비롯해 기재부와 관세청을 대상으로 전격 압수수색을 실시했다. 지난 2월과 3월 사이에 박근혜 대통령과 양 그룹사 총수가 비공식 개별 면담을 가졌고, 그 직후 기재부는 면세점 관련 규제를 완화했으며 관세청은 면세점 사업자 4곳을 추가 선정한다고 발표했다. 검찰은 양 그룹 총수의 대통령 독대와 재단 출연금, 면세점 사업자 추가 선정이 서로 연관 관계가 있다고 보고 재단 출연금의 뇌물죄 성립 여부를 들여다 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두 그룹은 모두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총수의 대통령 독대와 재단 출연금 간 연관성도 없는데다 결과적으로 본인들이 본 특혜가 없다는 것. 롯데는 초기 K스포츠 재단으로부터 75억 출연을 요구 받았다가 35억으로 낮춰 제안했고, 결국 지난 5월에 70억원을 냈다가 다음 날 돌려받았다. SK측도 K스포츠 재단에서 요구한 추가 출연금 80억원이 너무 많다며 30억원으로 역제안했다가 결국 출연을 거부한 바 있다.
이 같은 흐름을 볼 때 '억울하다'는 그들의 주장도 일견 일리가 있어 보인다. 만약 그룹 총수와 대통령이 독대해 직접 출연금액에 대해 합의했고, 대가성이 있었다면 이 같은 절충과 거부가 있을리 만무하다. 게다가 연간 수 천억원의 매출을 보장받는 '면세점 사업권'이 출연금의 이유였다면 70억원이나 80억원으로 해결될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재단 출연금의 대가성?…피해 없으면 다행
억울한 것은 비단 롯데와 SK 뿐만이 아니다. 복수의 기업 관계자들은 '미르·K스포츠 재단의 배경에 청와대 혹은 알 수 없는 정부 실세가 있다는 사실을 뻔히 알면서도 출연금을 거부할 수 있는 기업이 어디 있겠느냐'며 '대가를 바라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단지 괘씸죄에 걸려 피해를 입지 않겠다는 심정으로 출연금을 낸 것 아니겠냐'고 항변했다.
최순실씨와 청와대의 의중에 순순히 따르지 않은 기업들은 사업 운영에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올해 2월 대통령과 권오준 회장 독대 당시 여자 배드민턴팀 창단을 요구 받았던 포스코가 46억원이라는 비용적 부담에 난색을 표명, 창단을 거절하자 안 전 수석은 세무조사, 인허가 불이익 등 압박을 행사했다. 결국 포스코 그룹은 2017년 펜싱팀을 창단하고 매니지먼트사를 더블루케이에 맡기며 백기를 들었다.
K스포츠재단의 투자 요구를 거절했던 SK그룹은 CJ헬로비전 인수합병의 꿈도 접어야 했다. 이와 관련해 전 K스포츠 사무총장인 정현식씨는 SK그룹이 재단에서 요구한 투자 금액보다 적은 금액을 역제안해오자 최순실씨가 이를 거부해 SK텔레콤의 인수합병이 무산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평창 동계올림픽 관련 업체 선정에 특혜를 강요 받았던 한진의 조양호 회장은 청와대 지시를 따르지 않았다는 이유로 김종 전 문화체육관광부 차관으로부터 압력을 받았으며, 활발히 활동해오던 평창 동계올림픽 조직위원장직에서 갑작스럽게 사퇴하게 됐다.
건강 상의 이유로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것처럼 보였던 CJ 이미경 부회장은 조원동 전 청와대 경제수석의 퇴진을 요구하는 녹취가 언론에 공개되면서 청와대 압력으로 물러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받고 있다.
기업들의 출연금 사례를 볼 때 특혜는 커녕 정권의 의중에 따르지 않은 수 많은 기업들이 보복, 압박, 협박에 시달려 울며 겨자먹기식 출연을 한 정황을 확인할 수 있다. 즉, 그들의 출연금에 대가성이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한 재계 관계자는 "미르·K스포츠 재단에 출연한 53개 기업 중 12곳이 적자였다"며 회사 곳간이 비어 힘들어도 우선 돈을 내고 볼 수 밖에 없었던 것은 안 냈을 때의 후폭풍을 감당할 수 없을 것이라고 직감했기 때문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런데 이제 와서 기업들도 국정농단 세력들과 마치 한 패거리인 것처럼 몰아가는 상황이 매우 안타깝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