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증현 전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11월29일 서울 역삼동 한국과학기술회관에서 열린 '휴넷골드명사초청특강'에서 강연을 하고 있다. /김승호
"한마디로 지금 한국 경제의 총체적 상황은 내우외환이다. 설상가상, 백척간두, 풍전등화라는 말로도 표현할 수 있다. 망망대해에 홀로 떠 있는 고장난 대한민국호를 우리 스스로 뜯어고쳐야한다는 이야기다."
행정고시 10회 출신으로 재무부·재정경제원(현 기획재정부) 주요 국장 등을 거쳐 금융감독위원장, 기획재정부 장관까지 역임한 윤증현 전 장관이 바라보는 한국 경제의 현 모습이다. 윤 전 장관은 공직을 떠난 2011년부터는 서울 여의도에 윤경제연구소를 차려놓고 저성장, 구조조정 등 경제 현안에 대한 연구에 집중하며 언론, 강연 등 다양한 채널을 통해 자신의 경제 논리를 설파하고 있다.
그는 또 현재 대한민국을 송두리째 흔들고 있는 '최순실 게이트'와 관련해선 "돈이 모든 것의 가치척도가 돼선 안된다. 이것이 천민자본주의다. 지금의 (최순실)게이트가 바로 천민자본주의의 대표적 사례"라고 꼬집었다.
특히 윤 전 장관은 "우리는 자유와 평등에 대해서도 망각하고 있다. 자유는 과잉 속에서 그 소중함을 깨닭지 못하고 있다. 평등도 마찬가지다. 법앞의 평등도 중요하다. 대통령도 법앞엔 평등해야하기 때문에 잘못했으면 (검찰)조사를 받아야 한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대외 경제에 대해선 미국이 올해 한 차례, 내년에는 두 세 차례 금리를 인상할 것으로 내다봤다.
교육기업 휴넷이 지난 11월29일 저녁 서울 역삼동 한국과학기술회관에서 마련한 '휴넷골드명사초청특강' 자리에서다.
윤 전 장관은 당초 예정됐던 1시간 반의 강의를 훌쩍 넘겨 2시간 가까운 시간 동안 한국 사회의 자화상, 현 경제 상황 진단, 해외 주요 경제권 동향, 우리의 딜레마와 향후 숙제 등을 하나, 둘씩 풀어냈다.
윤증현 전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11월29일 서울 역삼동 한국과학기술회관에서 열린 '휴넷골드명사초청특강'에서 강연을 하고 있다. /김승호
그는 성장주의자다. 성장을 통해 현재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대부분의 경제 문제를 풀 수 있을 것이란 게 윤 전 장관의 생각이다. 이 과정에서 구조개혁, 고용 유연성 확보, 주요 산업 재편 등 뼈를 깎는 고통을 겪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윤 전 장관은 "성장하지 않으면 일자리가 생기지 않는다. 성장이 일자리 창출의 기본이다. (성장하면)복지재원도 마련할 수 있다. (성장은)삶의 수준을 향상시키는 근원"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반도 전체를 경제특구로 만들어야 한다"는 아이디어도 내놨다. 개발과 경쟁을 집중시켜 경제성장률을 끌어올리고 특히 물가 상승을 수반하지 않으면서 안정적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잠재성장률을 제고해야한다는 것이다.
"구조적 문제에 산업절벽 위기까지 겹치며 기업의 성장을 가로막고 있다. 미국은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면서 법인세와 소득세를 낮추는 감세정책을 하겠다고하는데 우린 오히려 법인세를 올리려고한다. 기업에 대한 정서도 그렇다. 우리나라는 대기업하면 나쁜 집단으로 생각한다. 반기업정서가 팽배해있다. 이런 분위기에 누가 기업을 하겠느냐. (한국이 배출한)글로벌 대표기업(숫자)도 축소될 수 밖에 없다." 윤 전 장관이 목소리를 높였다.
윤 전 장관은 2시간 가까이 이어진 이날 강연에서 교육 문제에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1년을 살려면 곡식을 심고, 10년을 살려면 나무를 심고, 100년을 살려면 덕(사람)을 심어라'는 말이 있다. 사람이 그만큼 중요하다. 모든 사회현상의 근저에는 교육이 자리잡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교육 이념과 철학이 없다. (교육은)양과 질에서도 모두 실패했다."
이웃나라 일본은 교육을 통해서 '폐를 끼지지 말라'를, 미국은 '준법정신과 정직'을, 독일은 '명예'를 가르치는데 우린 교육을 통해 과연 무엇을 가르치느냐는 것이다.
윤 전 장관은 "공교육은 붕괴됐고, 사교육비 부담이 늘어나면서 중산층은 붕괴 위험에 처해있다. 희망의 사다리는 없어졌고, 신분 상승의 기회도 소멸됐다. 이는 모두 고교등급제, 본고사, 기여입학을 막은 '3불 정책' 때문에 발생했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변별력도 없는 수능시험을 없애야한다. 대학입시도 대학 자율에 맡겨야한다. 일부에선 입시를 책임질 수 있는 능력을 가진 대학이 몇 곳 안된다고 하지만 그런 경쟁력도 없으면 (대학이)문을 닫아야한다"고 덧붙였다.
교육에 대한 그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윤 전 장관은 "사립대에 지원해주던 예산은 국공립대로 가져와야한다. 국공립대에 정부 예산을 집중 투입해 돈이 부족하지만 공부를 하고 싶은 학생들에게 도움을 줘야한다"며 "경쟁에 적응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고교입시도 부활해야한다. 누가 나왔는지도 모르고 뽑는 교육감 직선제도 문제다. 교육행정체계 개편 역시 (교육개혁을 위해)절실하다"고 덧붙였다.
윤증현 전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11월29일 서울 역삼동 한국과학기술회관에서 열린 '휴넷골드명사초청특강'에서 강연을 하면서 노동시장 개혁에 관해 프리젠테이션을 보면서 말을 하고 있다. /김승호
우리 경제 현실을 '바람 앞의 촛불'로도 비유한 윤 전 장관은 산업구조조정이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과거 조선업으로 호황을 누렸다 아픔을 겪었던 스웨덴의 항구도시 말뫼를 예로 들었다.
"구조조정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대한민국 제조 수출의 전초기지 역할을 했던 울산, 포항, 거제가 '말뫼의 눈물'과 같이 '울산의 눈물' 등이 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말뫼의 눈물'은 현재 울산 현대중공업에 있는 골리앗 크레인의 별칭이다. 2000년대 초반 당시 세계에서 가장 컸던 이 크레인은 스웨덴 말뫼에 있던 글로벌 조선업체 '코쿰스' 소유였다. 하지만 회사가 문을 닫으면서 고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이 단돈 1달러를 주고 사와 현대중공업을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시킨 상징적인 시설로 꼽힌다. 골리앗 크레인이 현지 항구를 떠나던 날 30만 명 가량의 말뫼 시민들이 몰려나와 눈물을 흘렸다는데서 이같은 별칭이 붙었다.
윤 전 장관은 저출산·고령화 문제에도 관심이 많다.
출산율이 떨어지고 산업 현장의 인력이 늙어가면서 결국 경제 성장에 걸림돌이 된다는 차원에서 문제 해결 방법을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우리는 일본의 고령화속도보다 더 빠르다. 그런데도 아무런 준비없이 고령화사회를 맞고 있다. 인구 문제에서 대표적으로 실패한 나라가 일본인데 우리는 대책 없이 일본보다 더 (문제가)악화되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해법으로 미국과 같이 이민을 조직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이민청 또는 이민국을 만들어야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윤 전 장관이 꾸준히 이야기하는 바다.
윤 전 장관은 "우리는 다문화, 다민족 문화로 갈 수 밖에 없다. 인정해야 한다. 프랑스나 미국처럼 이민을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면서 "혼외출산비율만 보더라도 우리나라는 2%로 OECD 평균(40%)에 한참 미치지 못한다. 혼외출산에 대한 인식과 문화를 바꾸는 것도 저출산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