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최악'의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 사태가 50일 넘게 지속되는 가운데 최근 AI가 진정세를 보이며 소강 국면에 접어든 것 아니냐는 분석이 조심스레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AI에 감염된 고양이 및 야생조류가 계속 발생하고 있어 아직 안심하긴 이르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특히 일부 전문가들은 현재 남쪽에 대거 상륙한 철새로 AI가 재확산 될 가능성도 있는 만큼 긴장을 늦추면 안된다고 강조하고 있다.
◆의심신고 줄었지만…AI 고양이 첫 발생·철새 등 변수
5일 AI중앙사고수습본부에 따르면 작년 11월 16일 최초 의심 신고 이후 52일째인 이날 0시 기준, 전국적으로 살처분된 가금류 수는 총 3054만 마리로 집계됐다.
이날 신규 AI 의심 신고 건수는 인제, 나주에 각각 1건 씩 총 2건에 그쳤다. 의심 신고건수는 지난 달 27일 1건을 시작으로 30일 3건을 제외하면 모두 1,2건으로 집계돼 최대 14건이 접수되던 시기와 비교하면 확실히 줄어든 것이 사실이다. 때문에 방역당국은 AI 확산 추세가 일단 진정 국면에 접어든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전례 없이 빠른 이번 H5N6형 AI의 확산 속도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던 방역당국은 확산 기세가 한풀 꺾이자 일단 반색하는 분위기다.
그러나 아직 안심하기에는 이르다는 것이 당국의 판단이다. 여전히 예측불허의 변수가 곳곳에 있기 때문이다.
최근 경기도 포천에서 AI에 감염된 고양이가 발견됐다.
이미 중국에서 H5N6형에 17명이 감염되고 이 중 10명이 사망한 사례가 보고된 상황에서, 국내에서도 조류→포유류로의 감염 사실이 확인돼 인체 감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당국은 오는 13일까지 전국 주요 AI 발생지역 11개 시·군, 서울 등 7개 광역시에서 고양이 10마리씩 포획해 AI 감염 여부를 검사하기로 했다.
우리나라 남쪽에 대거 상륙한 철새로 인해 AI가 재확산할 가능성도 있다.
실제로도 그동안 발생 추이를 보면 야생조류 확진 사례가 나온 지역은 얼마 뒤 곧바로 인근 농가에서도 AI 의심 신고가 접수되는 양상을 보였다.
지난 4일 농가의 AI 피해가 거의 없었던 부산과 경남 지역을 중심으로 야생철새에서 AI 확진 판정이 3건이나 나온 것에 당국이 촉각을 곤두세운 것도 이 때문이다.
서울대 수의과대 박용호 교수는 "통계적으로 1월에 AI가 전파되는 사례가 많은 만큼 설 명절 전까지 방역의 긴장을 늦추면 안된다"며 "특히 유전자 변형이 활발한 인플루엔자의 특성 상 철새가 H5 계열이 아닌 H7계열을 전파할 경우 유전자 재조합을 통해 고병원성으로 발달하면 지금보다 더욱 심각한 상황을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전국 가금류 축산 기반 초토화… 손실 규모 1조원 이를 듯
이번 AI 사태로 인해 가장 큰 피해를 본 건 역시 축산농가들이다. 이중 직격탄을 맞은 산란계 농가는 생산 기반 자체가 무너졌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산란계의 경우 전체 사육규모 대비 32.1%에 해당하는 2245만 마리가 살처분됐고, 여기에 번식용 닭인 산란 종계의 경우 전체 사육규모의 절반 가까이에 해당하는 41만 마리가 살처분됐다.
특히 전국 3대 산란계 밀집단지인 경기 포천과 전북 김제, 경남 양산 등이 AI에 모두 뚫렸다.
살처분 여파로 하루 4300만 개 정도였던 계란 생산량은 AI 발생 이전보다 30% 가량 줄어든 하루 3000만 개 정도다. 병아리가 산란용 닭으로 자라는데 6개월 이상 걸리는 점을 고려하면 계란 수급 불안 장기화는 불가피할 전망이다.
올 겨울 우리나라에서 처음 발견된 H5N6형은 과거 유행한 그 어떤 AI 바이러스보다 전염성이 강하고 확산 속도가 빨랐다.
발생 50일 만에 전국 10개 시·도의 37개 시·군으로 확산했고 5일 현재 국내 전체 사육 가금류 1억6525만 마리의 약 19%인 3054만 마리가 살처분됐다.
더불어민주당 위성곤 의원에 따르면 살처분 보상금 소요액만 약 2308억원(국비 1846억원, 지방비 462억원)으로 추정되고 있다.
여기에 농가 생계안정 자금 등 직접적인 비용을 비롯해 육류·육가공업, 음식업 등 연관 산업에 미치는 간접적인 기회손실 비용까지 모두 합치면 피해 규모가 1조 원에 육박할 것이란 관측도 있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지난달 보고서를 통해 AI 도살처분 마릿수가 전체 사육 마릿수의 20%를 차지할 경우 초래되는 직·간접적인 손실이 9846억 원에 달할 것이란 전망을 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