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수사가 벌써 5개월째예요. 입이 마르고 진이 다 빠질 정도로 지칩니다."
재계의 한숨이 깊어지고 있다. 지난해 11월 검찰에 이어 특검, 다시 검찰로 돌고 도는 수사에 몸살을 앓고 있기 때문이다. 대내외에 현안이 산적해 있지만 총수와 관련자들의 소환조사 및 출국금지로 인해 경영역시 수개월째 제자리다.
19일 재계에 따르면 검찰 특별수사본부가 SK, 롯데, CJ 등 대기업 수사에 본격화하고 있다. 이번 특수본의 대기업 수사 쟁점은 최순실씨가 설립을 주도한 미르·K스포츠재단에 낸 이들 기업의 출연금 성격 규명에 초점이 맞춰진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8일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13시간이 넘는 조사를 받고 이튿날 새벽 귀가했다. 앞서 지난 16일에는 SK그룹 김창근 전 SK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과 김영태 전 커뮤니케이션위원장(부회장), 이형희 SK브로드밴드 대표이사 등 전·현직 최고위 임원 3명을 소환조사했다.
SK그룹의 경우 최 회장의 사면에 대한 대가성으로 연결되는 대목이다. 최씨가 관여한 2015∼2016년 두 재단 설립 당시 최태원 회장과 최재원 부회장의 사면 문제가 현안이었다.
SK그룹은 최 회장 사면과의 관련성에 대해 "개입한 바가 없다"며 부인했다. 이 관계자는 "최 회장의 사면은 당시 적법한 절차에 따라 진행되었을 뿐만 아니라 당시 최 회장이 사실상 수형 기간을 거의 채운 상태에서 정치권 등에서도 사면에 대한 긍정적 여론이 지배적인 상황이었다"며 "사면이 대가성과 무관할 뿐더러 출연금도 최씨 등의 강요에 어쩔 수 없이 낸 준조세 성격"이라고 항변했다.
검찰 특수본측은 "필요하다면 롯데와 CJ 관계자도 소환해 조사할 수 있다"고 밝혀 롯데와 CJ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들 기업 역시 "대가성이 없었다"며 기존 입장을 고수하면서도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고 있다.
계속되는 수사에 주요 기업들은 벌써 수개월째 사실상 비상경영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최근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중국산 한국 세탁기 반덤핑관세 압박 등 보호무역주의 강화와 중국 정부의 사드(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THAAD) 보복 경제조치 등 대내외적 경영 환경은 급변하고 있지만 기업들은 이 같은 환경 변화에 제대로 집중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구속과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출국금지 조치 등 오너들의 발이 묶이고 있는 것도 경영차질을 키우고 있는 주된 요인이다. 삼성과 SK 등 주요 수사 대상이 된 대기업 오너들은 3개월째 출국 금지가 이뤄진 상태여서 해외 사업장 방문이나 글로벌 회의 참석조차 불가능한 상태다.
이재용 부회장의 경우, 이탈리아 자동차 회사인 피아트크라이슬러그룹(FCA)의 지주회사 엑소르(Exor)의 사외이사를 맡고 있으나 지난해 11월에 이어 내달 5일로 예정된 이사회에 참석할 수 없는 처지다.
최태원 회장도 이 달 말 중국 하이난 섬에서 열리는 '아시아판 다보스포럼'인 보아오포럼 참석이 불가능한 상태다. 롯데는 사드 부지 제공 후 중국 보복의 집중공세에 큰 타격을 받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재계는 "검찰과 특검 등을 통해 이미 주요 그룹에 대한 수사가 반복적으로 이뤄진 상황에서 특수본의 추가 수사는 신중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탄핵과 사드 보복 등 대내외적 혼란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기업들의 경영활동이 위축되고 있다"며 "다시 재수사를 하는 것은 우리 기업과 경제를 큰 쇼크에 빠뜨릴 수 있다"고 우려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이미 검찰도, 헌법재판소도 기업을 '피해자'로 봤다"며 "검찰 수사도 이를 참작했으면 하는 게 기업들의 간절한 바람"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