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년에 걸친 검찰의 '최순실 게이트' 수사에 발목이 잡힌 재계가 이번엔 재판에 발목이 잡히게 됐다. 검찰은 미르·K스포츠 재단에 출연금을 낸 53개 기업 가운데 유독 삼성과 롯데에만 뇌물공여죄를 적용했다.
18일 재계에 따르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구속에 이어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도 불구속 기소되면서 뇌물죄 관련 재판을 받게 됐다.
이재용 부회장의 구속으로 오너 공백이란 사상 초유의 사태를 맞고 있는 삼성은 경영정상화에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장기적인 경영 공백에 대한 우려는 계속되고 있다. 신동빈 회장은 불구속 기소됐지만 3~4일을 재판 준비와 출석에 할애해야 할 것으로 보이면서 사실상 경영공백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롯데, 사실상의 경영공백 불가피
창립 50주년을 맞은 롯데그룹은 최대의 시련을 겪고 있다. 신동빈 회장이 횡령과 배임 혐의로 이미 재판을 받고 있는 가운데 최순실 게이트와 관련해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뇌물공여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기 때문이다. 중국의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보복도 여전하다.
검찰은 신 회장이 박 전 대통령과 독대한 뒤 K스포츠재단에 70억원을 추가로 출연한 것을 뇌물수수로 보고 신 회장을 불구속기소했다. 롯데는 K스포츠재단과 미르재단에 각각 17억원, 28억원을 출연했으며 지난해 5월 말 K스포츠재단에 70억원을 추가로 기부했다가 돌려받은바 있다.
이에 대해 롯데그룹 관계자는 "70억원 추가 출연이 정식 기부 절차로 진행됐으며, 국가적 관심 사안에 대해 사회적 책임 차원에서 참여한 것"이라고 억울함을 호소했다.
'면세점 특혜' 의혹과 관련해서도 이 관계자는 "2015년 11월 잠실 면세점(월드타워점)이 특허 경쟁에서 탈락했으며 지난해 서울 시내 신규 면세점 추가 승인 가능성도 박근혜 전 대통령의 독대(3월 14일)보다 앞선 3월초부터 이미 언론 등에서 거론돼 온 만큼 독대의 결과라고 볼 수 없다"고 설명했다.
신 회장이 이번에 뇌물공여 혐의로 기소되면서 경영 공백이 우려된다. 이미 신 회장은 피에스넷 증자 관련 그룹 계열사 동원 건, 형인 신동주 전 일본롯데홀딩스 부회장 등 총수 일가에 대한 급여 제공 건 등의 혐의로 매주 이틀 정도를 법정에 출두하고 있다. 이번에 뇌물공여 혐의까지 더해져 앞으로 1년간은 매주 3~4일을 재판 준비 및 법정 출석에 써야한다.
여기에 중국의 사드 보복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롯데에 따르면 사드 보복이 계속되면 올해 상반기까지 영업 손실이 1조원에 상회할 것으로 내다봤다.
현재 중국의 롯데마트 99개 지점의 약 90%가 문을 닫았고 국내 면세점 매출 손실, 롯데 식품 계열사의 중국 수출액 감소 등으로 피해는 늘어나고 있다. 지난달 사드 보복으로 롯데 전체 매출 손실 규모는 2500억원으로 나타났다. 영업손실도 500억원이나 발생했다.
신 회장은 중국의 사드 보복과 관련해 출국금지가 해제되면 직접 중국에 가서 사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뜻을 여러 차례 밝혀왔지만 불구속 기소와 함께 출국금지 상태가 유지된다면 불가능할 수밖에 없다.
지주사 전환 및 호텔롯데 상장 등 지배구조 개편도 불투명해졌다. 롯데그룹 관계자는 "재판으로 물리적 시간 제약이 있겠지만 지주사 전환, 투명경영, 사회적 책임 확대 등 개혁작업에 차질이 없도록 최선을 다 하겠다"고 말했다.
◆삼성전자, 1분기 깜짝 실적에도 '침울'
삼성전자는 1분기 깜짝 실적에도 침울한 분위기다. 사이클 전환이 빠른 IT 산업 특성상 성장동력 발굴을 위한 투자에 힘써야 할 시점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구속으로 총수 부재 상황이 이어지고 있어서다.
삼성전자는 지난 7일 공시한 1분기 영업이익(잠정실적)은 역대 두 번째로 많은 9조9000억원이었다. 1분기 실적에서 9조원 넘는 영업이익을 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최신 스마트폰 '갤럭시S8'의 가세로 2분기 흑자 규모는 최고치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내부에서는 장기적인 시각에서 보면 문제가 발생할 소지가 있다는 위기감이 크다. 특히 이 부회장이 구속된 이후 삼성전자의 M&A(인수합병)와 투자가 멈췄다는 점에서다.
이 부회장은 지난해 10월 등기이사에 취임하면서 신성장동력 확보를 위한 차세대 먹거리 사업 발굴에 공격적인 행보를 이어왔다.
'선택과 집중' 전략으로 하만 인수를 성사시키기도 했다. 이를 통해 전장사업 후발주자에 불과했던 삼성은 단숨에 전장사업분야 토털 솔루션 기업으로 도약했다.
이외에도 삼성은 이 부회장이 경영 전면에 등장한 2014년 이후 15개의 해외기업을 사들였다. 사물인터넷(IoT) 개방형 플랫폼 기업인 스마트싱스 인수를 시작으로 지난해에는 클라우드 관련 업체 조이언트, 인공지능(AI) 플랫폼 개발 기업 비브랩스 등을 인수했다.
2015년 인수한 루프페이는 글로벌 IT기업 간 주도권 싸움이 치열했던 핀테크 분야에서 삼성페이가 안착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아울러 지난해 8월 인수한 프리미엄 빌트인 가전업체 데이코는 북미 프리미엄 가전 시장 진출의 교두보를 놓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이 부회장의 구속으로 삼성의 이 같은 M&A와 신사업 추진 등이 모두 올스톱 됐다. 당장 올해 투자 계획도 확정하지 못했다.
삼성이 추춤한 틈을 타 중국·일본 업체들이 반사이익을 얻을 수 있고 이는 곧 삼성의 치열한 글로벌 경쟁에서 자칫 낙오될 가능성에 우려를 낳고 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오너가 없는 상황에서 대규모 투자나 M&A 등의 결정하기 쉽지 않다"며 "중국과 미국 등의 업체가 반도체, 디스플레이 시장에서 삼성을 바짝 추격하고 있는 상황에서우리가 지금처럼 주춤한다면 경쟁력을 잃는 것은 시간 문제"라고 말했다.
일각에선 검찰이 미르·K스포츠 재단에 출연금을 낸 53개 기업 가운데 유독 삼성과 롯데에만 뇌물죄 혐의를 적용한 것에 대해 형평성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재계 관계자는 "불확실성이 점차 커지는 대·내외 경제환경 속에서 계속된 국내 대표 기업 총수에 대한 수사로 글로벌 브랜드 이미지 훼손뿐 아니라 경제적 파장도 커질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