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알파고는 발칙했다. 알파고와 커제 9단과의 바둑 대결. "너 이거 알아?" 알파고는 일찍이 보지 못했던 묘수를 던졌다. 알고리즘 전술은 가히 변화무쌍했다. 예기치 않은 파격수가 바둑판에 착착 꽂혔다. 인간계 최고수는 그 때마다 고개를 갸웃거리며 진땀을 뺐다. "그렇게 밖에 못 두겠니"라고 속삭이는 거 같았다는 게임. 결과는 삼세판 모두 알파고의 승. 커제는 참았던 눈물을 떨궈야 했고, 알파고는 인간계 바둑의 천하를 평정하며 기세등등했다.
천하무적의 돌을 휘둘렀던 알파고는 그러나 돌연 바둑판에서 손 떼겠다고 선언했다. 인간들은 '바둑의 신' 강림을 연호하며 부여잡았지만 알파고는 냉정하게 뿌리쳤다. 은퇴의 변이 섬뜩하다. 인간이 굳이 가르쳐 들지 않아도 스스로 새로운 논리와 지식을 깨우칠 수 있다는 저 불꽃 스치는 예고가. 그것은 5천년을 갈고닦은 인간 바둑판에선 더 이상 배울 게 없다는 비아냥거림으로 들렸고, 바둑 평정은 시작에 불과하고 곧 인간 세계를 지배할 거라는 선전포고였다.
물론 공학도에겐 장밋빛 청사진으로 들렸을 것이다. 더러는 새로운 문명의 지평을 여는 세기적 대사건에 흥분을 감추지 못했을 거다. 그런데 그 역습에 대한 출구전략은 여태 들어본 적이 없다. 구글의 딥마인드 측은 '어떤 일까지 할 수 있느냐를 정하는 것은 사람'이라고 경계했다. 문제는 그 가이드라인을 점지한다는 사람들의 품성. 모두가 성인군자일 수도 없거니와, 진화에 질주 본능을 드러내는 인공지능이 자칫 이성을 잃으면 어디로 튈지 아무도 장담 못한다.
그래서다. 이런 물음을 달게 된다. 그 욕망의 끝은? 가늠조차 안 된다. 어렴풋하게나마 그 끝은 감정과 자아를 지닌 그 무엇에 닿는다. 마음의 씨를 이식한 그 무엇. 그것도 창의력을 갖고 스스로 학습하고 진화하는 능력을 갖춘다면? 과학자들은 그런 초인공지능(ASI)을 가진 인간 아바타가 30년 내 출현할 걸로 보고 있다. 만물의 이치를 통달한 척척박사 빅 데이터 칩이 불티나는 풍경도 그려진다. 그 칩을 인간 뇌에 끼운 '증강지능 인간(AHI)'의 등장을 말이다.
알파고는 그런 밑그림까지 그리며 욕망의 입을 벌리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지금은 당장 돈이 되는 쪽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 의학이다. 수천만 건에 달하는 진단. 이 방대한 예시들을 자율학습해 환자의 증상에 따라 병명을 속전속결로 진단하는 의사로 변신할 것이다. 다음 욕망은 한 치의 오차를 허용치 않는 정교한 '시술의 신'이다. 신약 개발은 그야말로 돈밭이다. 고급 인력들이 머리를 맞대고 수년씩 걸리던 특효약을 혼자서 수 주 내에 개발할 거다.
그렇다면 그 욕망의 끝은? 하나같이 척척박사 뇌 칩으로 무장된 영재들! 손만 스쳤다하면 완치되는 시술! 만병을 통치하는 불로초 개발! 과연 이런 게 가능하기나 한 것인가.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은 그런 상황을 '인류의 종말'로 봤다. 테슬라의 CEO 일론 머스크는 '악마의 소환'이라고 경고했다. 나는 그들의 말을 믿는다. 만일 상품화된 칩에 오류의 알고리즘 바이러스가 창의적으로 증식한다면? 오판에, 오진에, 오작동에 세상은 출구 없는 대혼란에 빠질 거다.
인공지능이 좇는 욕망의 끝은 신의 영역일 거라는 생각이 전율처럼 스친다. 인공지능이 제아무리 날뛰어도 인간 위에 군림할 수 없다는 조물주의 절대 명제. 스포츠 경기에 심판 없이 비디오판독기가 승부를 판정하는 광경을 상상해보라. 숨 쉬지 않고 번민하지 않는 기계 의사에게 생명을 맡긴다고 그려보라. 그건 인류 종말의 축소판이다. 어쩌면 신이 인간의 뜨거운 가슴 속에 욕망의 사용설명서를 넣어줬는지도 모른다. 그 사용설명서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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