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 기본료 폐지를 강행했던 정부가 성급한 결정을 내리지 않겠다고 밝히면서 이동통신비 인하 방안이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됐다. 인위적으로 기본료 폐지 압박을 강행할 것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국민의 통신비 부담을 완화할 정책을 체계적으로 마련해야 한다는 대안론에 힘이 실리고 있는 것이다.
국정거래위원회는 세 차례에 걸쳐 미래창조과학부의 통신비 인하 방안을 보고 받았지만, 기본료 폐지를 압박하며 거듭 퇴짜를 놓은 바 있다. 그러나 산업계에 끼치는 영향을 고려하지 않고 면밀한 검토 없이 압박만 가한다는 지적이 이어지며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더구나 유영민 미래부 장관 후보자가 통신비 인하와 관련해서 "충분한 논의 과정을 거치겠다"고 업계와의 협의 가능성을 시사함에 따라 이동통신사들과 협의를 통한 해결책 마련으로 방향을 선회할 것으로 전망된다.
14일 국민의당은 국정위가 추진하는 통신 기본료 폐지 방안과 관련, "기본료 일괄 폐지만이 통신비 인하의 핵심이라는 협애한 틀에서 벗어나 실현 가능한 정책부터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며 가계통신비 인하의 답이 인위적인 기본료 폐지만이 아니라고 지적했다.
이용호 정책위의장과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소속 김경진·신용현·오세정·최명길 의원은 이날 보도자료를 내고 "현실을 도외시한 일방적 통신 기본료 폐지는 국민혼란과 기업 불만만 불러오는 부실한 정책이 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밝혔다.
국민의당은 통신비 인하를 위한 실현 가능한 대안으로 ▲제4 이동통신 사업자 설립 ▲ 온국민 데이터 무제한제 도입 ▲중소 알뜰폰 활성화 지원 ▲공공 무료 와이파이 대폭 확대 ▲제로레이팅 활성화 ▲단통법 전면 개선 등을 제안했다.
실제로 2G·3G 요금제 중심으로 기본료 1만1000원을 폐지할 경우 가입자 체감 혜택은 크지만 혜택을 누리는 가입자는 소수에 불과하다. 이동통신 3사 2G·3G 가입자가 전체 휴대전화 가입자 5533만명의 16% 수준인 906만명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롱텀에볼루션(LTE) 요금제를 쓰는 대다수 소비자들은 별다른 혜택이 돌아가지 않는 것이다.
또 통신비에는 기본료 외에도 단말기 할부요금, 부가 서비스 등 다양한 세부 항목이 포함돼 있다. 녹색소비자연대 전국협의회 ICT소비자정책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소비자들이 내는 고지서 상 요금 중 통신 서비스 요금의 비중은 55%에 불과하다. A 통신사가 2015년 고객들로부터 받은 전체 요금을 100이라고 봤을 때 자사의 통신서비스 이용요금 비중은 55.6%에서 지난해 54.6%로 줄어든 반면, 부가사용금액은 같은 기간 21.4%에서 24.2%로 증가했다.
때문에 늘어나는 데이터 이용 부담을 완화하는 공공 와이파이 대폭 확대나 사업자가 특정 서비스의 트래픽 요금을 무료 혹은 저렴한 값에 제공하는 제로레이팅이 대안으로 꼽힌다.
최근 KT를 포함해 정부의 정책에 발맞춰 움직인 공공 와이파이 개방도 국민들의 데이터 절감 방안 중 하나다. 그간 와이파이 개방에 소극적이었던 KT는 오는 8월 중 와이파이 접속장치(AP) 10만개를 개방키로 결정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제시한 '와이파이 프리 대한민국' 공약에 발맞춘 셈이다.
게임, 음악 등에 데이터를 많이 소비하는 이용자는 특정 분야의 데이터를 무료 혹은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는 제로레이팅으로 데이터 요금 절감 효과를 누릴 수도 있다. 실제 우리나라 데이터 이용량은 2014년 2.1기가바이트(GB)에서 지난해 4.3GB로 2년 만에 두 배 이상이 늘어났기 때문에 데이터 이용에 혜택을 주는 정책이 보편적 가계통신비 절감 방안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가계통신비 인하를 위해서는 현재 고착된 시장 판도의 변화를 바꿔야 한다는 분석도 힘을 더하고 있다. 현재 이동통신 시장은 SK텔레콤, KT, LG유플러스 등 3대 통신사가 5:3:2의 점유율을 유지하고 있다. 시장이 3강 구도로 정착되면서 경쟁이 약화되고 가계통신비 인하 요인이 없어졌다는 분석이다.
국민의당 측은 "제4이동통신 사업자를 설립해 고착화한 통신시장 독점 상황을 개선해야 한다"며 "음성에서 데이터 중심으로 통신 이용 트렌드가 바뀌어 데이터 요금 부담이 가중되는 만큼 데이터 속도 조절을 통한 무제한 데이터 추가 이용 서비스를 도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알뜰폰 사업 활성화도 가계통신비 절감 대안으로 꼽힌다. 알뜰폰은 지난 2011년 국가가 가계통신비 절감 대안으로 육성한 사업으로, 가입자당 평균 매출(ARPU)이 이동통신 3사의 약 40% 수준으로 가계통신비 절감의 일등공신으로 불린다. 실제 알뜰폰 사업자들은 지난 13일 성명을 내고 ▲ LTE 도매대가 조정 ▲ 전파사용료 면제 ▲ 분리공시제 신속 도입 등의 정책을 실현하면, 이동통신사 대비 40% 저렴한 LTE 요금제를 내놓을 수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밖에도 20%인 선택약정할인을 30%로 확대하는 방안, 단말기 비용 부담을 낮추기 위한 단말기 자급제 활성화 방안 등이 또 다른 대안으로 꼽힌다.
업계 관계자는 "현행 전기통신사업법 하에서 기본료 폐지를 강제할 수 없고, 강행 시 법적 문제로 비화돼 오히려 역풍을 맞을 수도 있다"며 "기본료 폐지 외에도 가계통신비 인하에 접근할 수 있는 다양한 방안을 살펴보고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