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시간에 너무 쫓겨 산다. 온몸으로 울려대는 자명종 소리, 씻으랴 밥 먹으랴 옷 입으랴 부산한 아침, 북적거리는 지하철역, 길을 재촉하는 버스안내전광판, 카운트다운을 세며 깜박거리는 신호등, 보채듯 빵빵대는 자동차의 경적 소리, 소실점을 향해 질주하는 기차, 길게 늘어선 계산대 앞, 줄기차게 오르내리는 엘리베이터, 즉석 단위로 날름거리는 전자레인지, 촌각을 다투듯 쏟아내는 뉴스들, 여기저기서 터지는 스마트폰 벨소리. 분주한 사람들로 넘실대는 거리.
그렇다. 우리네 도심 주변에 흘러 다니는 시간은 성마른 표정들이다. 시간이 사람을 가만두지 않으니 그럴 만도 할 것이다. 시간은 우리를 데리고 과거를 지나 그 끝을 알 수 없는 행선지를 향해 달려간다. 늘 사람과 함께 호흡한다. 그런데 같은 공기를 마시면서도 사람은 늙어가지만, 시간은 늘 청춘이다. 쫓기듯 데려가더니 웬 세월의 더께란 말이냐. 그 야속한 시간이 얼마나 원망스러웠으면 어느 대중가요는 '세월아 너는 어찌 돌아도 보지 않느냐'고 슬퍼했을까.
일전에 시내 한 미술관에 들려 감상한 기원전 고대미술 작품들이 이런 잿빛 시간들을 지워주었다. 수천 년의 시간이 박제된 작품들! 거기엔 깊고 넓은 부피와 무거운 질량의 시간이 감돈다. 그래서다. 그 앞에 서 있노라면 거대한 시간의 파도가 머리 위로 아른거리는 영화 속 주인공이 된다. 태고의 시간들이 층층이 응축된 가파른 파도일 것이다. 작품은 우리에게 말한다. 높다랗게 느껴지는 현재의 파도는 그 시간 앞에선 그저 사소한 잔물결과 점에 불과하다고.
그토록 쫓기듯 집착하던 시간이 왠지 부질없다는 생각이 고개를 든다. 세월을 담아낸 작품들은 매번 이렇게 시간의 의미를 되돌아보게 하고 가슴 치게 하는 것이다. 우린 씨줄과 날줄로 엮은 거미줄 시간에 갇혀 얼마나 조바심 내며 발버둥을 쳤던가. 얼마나 몸살을 앓아왔던 걸까. 반짝거리는 작품들은 도시생활에 찌든 내 무채색의 시간에 큰 너비로, 두께로, 무게로 걸어온다. 그 큰 너비는 넉넉한 여백을, 두께는 등을 기댈 기둥을, 무게는 겸손을 선물해준다.
이따금 기웃거리는 박물관에는 신비로운 시간이 흐른다. 그곳 풍물을 이해하려면 시차의 강을 건너야 한다. 문화와 종교, 민족, 인종이 파도치는 강을 광폭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겹겹이 쌓아온 시간들을 풍물들이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아니 몰이해할지라도 어렴풋하게나마 그 시간의 맥박을, 냄새를, 사연을 느끼고 들을 수 있다. 시간은 살아 숨 쉬는 생명체이기에 그럴 것이다. 그 시간의 너른 강을 휘적휘적 누비는 것만으로도 내겐 벅차다.
고대 미술품을 보면 고색창연한 시간의 물감을 풀어놓았다는 생각이 문득문득 들 때가 있다. 기막힌 풍경들을 만들어주고 사라진 시간들의 흔적이다. 그러나 죽은 시간은 아니다. 그 때 그 청춘의 시간이 여전히 발효하면서 부풀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저 오랜 세월을 머금고 있는 작품을 보면 나도 모르게 발걸음을 멈추는지도 모른다. 잠시나마 시간 밖 뜰에서 뛰놀게 하는 순간이랄까. 시간의 속박에서 벗어났기에, 그 시간만큼은 천천히 마디게 흐른다.
이런 시간들을 가끔 꺼내볼 수 있다면 좋겠다. 있긴 있다. 마음속의 박물관! 시간 속에 떠다니는 삶들을 담아 내 박물관의 밭에 심어 한 폭의 삽화를 만들고 싶다. 그래서 아등바등 시간에 쫓길 때마다 그 박물관을 노크하련다. 허물어진 시간들을 성찰하고, 다듬어 바로 세우고 싶다. 유난하게 야단스럽고 변덕스런 시간들을 보듬어주고 싶다. 내 박물관 출입문에 이런 말이 적혀 있다. 시간의 주인이 될 것인가. 아니면 시간에 끌려 다닐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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