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인선이 예상보다 늦춰지는 배경에 '주식 백지신탁 제도'(백지신탁)가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오면서 관련 제도가 또 다시 도마에 오르고 있다.
전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3년 당시 중소기업청장에 내정됐던 황철주 주성엔지니어링 회장이 청와대 발표 사흘만에 청장직을 고사한 결정적 배경에도 백지신탁 문제가 있었다.
관련 제도로 인해 황 회장은 청장이 되기 위해선 자신이 갖고 있던 주성엔지니어링 주식을 모두 매각해야했지만 결국 청장직을 포기하고 회사를 선택했다.
장·차관 등 고위공직자 인선 과정에서 4년 만에 또다시 백지신탁 문제가 불거지면서 기업 오너 출신 등 다양한 인재 등용을 위해 관련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의견과, 공직자로서 직무수행의 공정성과 중립성을 확보하고 이해충돌을 방지하기 위해 도입한 제도를 오히려 더욱 강화해야한다는 이야기가 엇갈리고 있는 것이다.
10일 인사혁신처와 중소·벤처기업계에 따르면 공직자윤리법상 공직윤리제도는 재산공개 대상자나 금융위원회, 기획재정부 소속 4급 이상 공무원 본인과 배우자, 직계존비속은 보유주식 총액이 3000만원을 초과할 경우 세 가지를 선택할 수 있다. ①주식 바로 매각 ②금융기관에 주식 백지신탁 ③주식백지신탁심사위원회 심사청구가 그것이다.
여기서 '백지신탁'이란 말이 나온다.
금융기관에 보유 주식을 백지신탁하면 해당 기관은 두 달(60일)내에 처분해야 한다. 본인이 파느냐, 기관이 대신 매도하느냐만 다를 뿐이다.
인사혁신처 관계자는 "공직자가 해당 주식을 계속 보유하길 원한다면 관련 심사위원회에 직무관련성 여부에 대해 심사청구를 하는 방법이 있다"면서 "하지만 직무관련성이 있다고 판단되면 해당 주식 역시 직접 매각하거나 금융기관에 백지신탁해 60일 이내에 처분해야 한다"고 전했다. 어떤 방법을 선택하든 결국 주식을 팔아야하는 것은 같다는 설명이다.
문제는 인사권자의 경우 공직에 새 바람을 불어넣고, 민간의 노하우를 활용하기 위해 오너 출신 고위공직자를 염두에 둘 수 있겠지만 오너 등 대주주가 회사를 팔면서까지 장관이나 차관 등 공직을 수락할 가능성이 얼마나 있겠느냐 하는 점이다.
청장직을 포기할 수 밖에 없었던 황철주 회장의 선택이 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 당시 황 회장은 내정자 사퇴 기자회견을 하면서 "백지신탁은 주식과 경영권을 신탁기관에 맡긴 뒤 공직이 끝나면 다시 찾는 것인 줄 알았다. 하지만 변호사로부터 확인한 것은 그런 내용이 아니었고, 내가 잘못 이해하고 있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는 "(백지신탁은)자유경제시장에선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법이 개정되지 않는 한 벤처·중소기업인이 공직에 앉기란 불가능할 것"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다만 현재 해외 출장중인 황 회장은 이번에 추가로 불거진 백지신탁 논란과 추가 의견을 묻는 질문에 대해선 "언급하는 것이 적절치 않다"며 말을 아꼈다.
중기벤처부의 한 관계자도 "기업을 키워 성공한 기업인이 (장관을 하기 위해)자기사업을 포기하겠느냐"는 말로 백지신탁이 갖고 있는 한계를 지적했다.
특히 중기벤처부의 경우 장관 인선 과정에서 이번 뿐만 아니라 향후에도 '현장성'과 '업계 이해도' 등을 이유로 들어 중소기업이나 벤처기업, 혁신기업 오너 출신이 얼마든지 고려될 수 있다. 하지만 당사자가 수행하게 될 부처 업무와 자신 회사와의 '직무관련성'이 없다는 판단을 받을 가능성이 희박해 회사를 과감하게 버리지 않는 한 오너 출신 장·차관은 요원할 수 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황철주 회장의 내정자 사퇴 문제가 불거지면서 당시 정치권에선 '황철주법' 이야기가 불거지기도 했다.
실제 김한표 자유한국당 의원은 당시 백지신탁 제도를 개선하기 위해 '공직자윤리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발의한 바 있다.
여기엔 기업인이 공직에 있는 동안은 본인 소유의 주식을 금융기관에 보유했다 퇴임후 반환받을 수 있도록 하는 내용과, 해당 기간 주가가 상승할 경우엔 그 차익을 국고로 환수하게 한 것이 포함돼 있었다. 하지만 관련 개정안은 결국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학계의 한 관계자는 "백지신탁은 당초 도입한 취지가 명백하고 공직자의 사적 개입을 막는 등 견제장치를 하고 있기 때문에 제도개선엔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