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의 '일감몰아주기' 규제 강화 움직임에 기업들의 지분 매각과 지배구조 개편 움직임 등이 빨라지고 있다.
13일 재계에 따르면 한화S&C는 지난 11일 IT서비스 사업부 지분 44.6%를 사모펀드 운용사인 스틱인베스트먼트가 운용하는 스틱스페셜시츄에이션펀드 컨소시엄에 매각했다. 매각 금액은 2500억원 정도다.
이에 따라 한화S&C는 오는 10월 중 기존 '한화S&C'와 '한화S&C SI사업부' 두 법인으로 물적분할하게 된다.
스틱컨소시엄은 분할된 사업부문 법인의 지분을 인수하고, 한화S&C 존속 법인에는 한화에너지·한화종합화학·한화큐셀코리아·한화토탈 등 계열사 지분과 일부 조직만 남게 된다.
한화S&C는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취임한 이후 대기업의 일감몰아주기 사례로 지목한 계열사 중 하나다.
일감 몰아주기는 대기업 집단에서 총수 일가가 지분을 많이 가진 계열사의 이익을 늘려주는 형태로 이뤄지는 거래를 말한다. 자산이 일정 규모 이상인 공시 대상 기업 집단의 계열사가 총수 일가 지분이 20%(상장사는 30%)를 넘는 계열사와 거래하면 사익 편취 규제 대상이 된다.
계열사 간 연간 거래 총액이 2000억원 이상이거나 관련 거래가 상대방의 평균 매출액의 12% 이상을 넘어서면 사익 편취 문제가 있다고 본다.
한화S&C의 한화그룹 내부거래 매출 비중은 2012년 46.5%에서 지난해 70.6%로 크게 증가했다. 지난해에는 시장 호황으로 한화그룹 화학계열사들이 SI서비스를 높은 가격으로 구입하면서 실적이 크게 늘어난 것이다. 그러나 공정위는 이 같은 수의계약의 가격 책정에 의문을 표하고, 지난 6월에는 한화S&C를 하도급거래 상습법 위반사업자 명단에 올렸다.
특히 한화S&C는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세 아들(김동관·김동원·김동선)이 지분 100%를 보유한 가족회사이기도 하다. 이로 인해 재계의 대표적인 오너 일가의 일감몰아주기 수혜 기업으로 지목돼 왔다.
한화 관계자는 "그동안 공정거래법상 일감몰아주기 규제 법안의 취지에 부응하기 위한 방안을 여러모로 검토해왔다"면서 "한화S&C 이번 지분 매각을 통해 분할된 법인의 대주주 지분율을 낮추는 동시에 외부 투자자의 사업관리 역할을 활용한 IT사업 발전을 모색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이번 한화S&C의 지분 매각은 한진그룹 조양호 회장의 아들인 조원태 대한항공 사장이 대한항공을 제외한 모든 계열사 대표이사에 물러난 것과 무관치 않다는 재계의 시각이다.
지난 6월 조 사장은 한진칼, 진에어, 한국공항, 유니컨버스, 한진정보통신 등 대한항공을 제외한 모든 계열사 대표이사 자리에서 물러났다. 또한 유니컨버스에 대한 지분도 정리하기로 했다.
한진은 이에 대해 "핵심 사업 역량에 집중하고 투명한 경영 문화 정착에 기여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재계는 한화와 한진의 이번 조치가 강화되는 대기업들의 일감 몰아주기와 경영권 편법 승계에 대한 선제적 대응으로 보고 있다.
문 대통령은 대선 공약으로 일감 몰아주기 제재를 강화한다고 공언해 왔으며, 현재 공정위는 하림에 대해 일감몰아주기 혐의로 직권 조사 중에 있다. 재계는 하림을 시작으로 공정위가 재계 전반에 대한 조사를 본격화할 것으로 보고 있다.
여기에 정치권에서는 총수 일가가 지분 20% 이상 보유한 상장사는 자동으로 일감몰아주기 규제 적용 대상에 포함시키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이럴 경우 총수 일가 지분율이 29%대인 현대글로비스, 이노션 등이 규제 대상에 포함된다.
재계 한 관계자는 "기업마다 공정거래법 준수를 위해 많이 노력해 왔던 만큼 법이 바뀌더라도 충분히 대응할 수 있을 것"이라면서도 "그러나 속도 조절은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