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도시바 메모리 인수가 사실상 불발되자 SK하이닉스가 낸드플래시 시장 강화를 위한 새로운 전략 짜기에 나섰다.
SK하이닉스는 올해 시설 투자 금액 총 9조6000억원 중 낸드플래시 투자를 늘려 생산능력을 확대하고, 공장가동률을 끌어 올린다는 계획이다.
SK하이닉스 청주 반도체공장의 생산라인. /SK하이닉스
29일 외신과 업계에 따르면 도시바는 미국의 웨스턴디지털(WD)이 포함된 신(新) 미·일 연합과 협상을 마무리 중이다. 신미일 연합에는 WD 외에 미국의 투자펀드 콜버그크래비스로버츠(KKR), 일본정책투자은행 등이 참가했다.
교도통신은 "WD가 매각 조건으로 소송을 철회해달라는 요구를 받아들이면서 협상이 급물살을 탔다"고 보도했다.
SK하이닉스는 당초 도시바 메모리 사업부 인수를 통해 낸드 분야 경쟁력을 강화하고 글로벌 시장에서의 점유율을 크게 끌어올릴 계획이었다.
지난 6월 SK하이닉스가 포함된 한미일 연합이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되며 이 같은 계획이 실현되는 듯 했다. 하지만 WD의 소송전, 시간끌기 전략에 도시바가 우선협상대상자를 WD로 교체하면서 전략 수정이 불가피해졌다.
SK하이닉스는 그간 도시바 인수와 상관없이 공격적인 투자는 진행한다는 계획이었던 만큼 올해 총 9조6000억원의 시설 투자에 나선다. 당초 약 7조원에서 2조6000억원 증액한 것으로, 사상 최대 규모다.
삼성전자, 도시바, 마이크론 등 경쟁 업체가 3D 낸드플래시 투자에 집중하는 만큼 SK하이닉스 역시 낸드플래시 설비를 집중적으로 늘려 시장 점유율을 강화한다는 방침이다.
또 2019년 상반기로 예정된 중국 우시와 청주 공장의 완공 시기를 내년 4분기 정도로 앞당기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증권업계는 WD가 낸드 시장에서 SK하이닉스, 마이크론 등에 우위를 점하게 됐지만 시장판도에 큰 영향은 없을 것으로 내다봤다.
유진투자증권 이승우 연구원은 "현재의 상황에서 시장이 크게 바뀌는 게 없을 뿐더러 도시바와 WD 임직원들간 감정적 갈등으로 인해 과연 SK하이닉스에 부담이 될만한 시너지 효과가 나올 것인가가 의문스럽다"고 분석했다.
삼성증권 황민성 연구원도 "도시바 메모리가 WD에 매각될 경우 각국 반독점 승인에 시간이 걸려 채권단이 원하는 내년 3월까지 매각종료 계획에 불확실성이 따른다"고 지적했다.
세계 D램 업계 3·4위를 다투던 일본 엘피다와 미국 마이크론이 2013년 합병한 바 있지만, 이후 시장점유율이 과거 두 회사의 점유율 합계에 미치지 못한 전력이 있어, 두 회사가 합병할 가능성도 희박할 것으로 예상된다.
반도체 업계는 오히려 이번 기회가 낸드 업계 2위 자리를 넘보는 SK하이닉스에게 좋은 작용을 할 수 있다고 봤다.
그는 "인수합병 이후에도 시너지를 내기 위해서는 어느 시간이 불가피하다"며 "당초 전망과 달리 D램 업황 호황이 계속되고 있어 SK하이닉스가 계획대로 생산능력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려 시장 지배력을 빠르게 확대한다면 오히려 기획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SK하이닉스는 도시바와 WD의 인수 합병에 대해 공식적인 입장을 보이지 않고 있다. 일각에서는 SK하이닉스가 WD나 도시바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는 게 아니냐는 추측이 제기되고 있으나 하이닉스 측은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선을 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