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이 31일 기아자동차 통상임금 1심에서 근로자들의 손을 들어주자 재계가 허탈감과 함께 우려를 표했다.
2013년 이후 올해 6월 말까지 통상임금 소송을 겪은 100인 이상 사업장은 전국 192개에 이르고, 이 가운데 115개는 여전히 소송 중이다. 이번 판결로 재계는 근로자들에게 투입될 노동비용만 수조원대에 이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여기에 내년도 최저임금이 급격히 상승하는 상황에서 정기상여금 등 통상임금 범위가 확대돼 이중의 부담이 될 것으로 봤다.
31일 대한상공회의소는 "통상임금 소송은 노사 당사자가 합의해 온 임금관행을 스스로 부정하는 것일 뿐 아니라 노사간 신뢰를 무너뜨리는 행위"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번 통상임금 판결은 대법원이 제시한 신의칙을 인정하지 않은 것으로, 상급심에서는 보다 심도 있게 고려해 판단해 주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이날 판결이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으로 인정하면서 신의칙을 적용하지 않았다"며 "기존 노사간 약속을 뒤집은 노조의 주장은 받아들여 주면서 지난 수십 년간 이어온 노사합의를 신뢰하고 준수한 기업에 일방적으로 부담과 손해를 감수하라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회사가 대내외적으로 어려운 상황에서 이번 판결로 3조원이 넘는 우발채무를 지게 돼 적자로 전환될 가능성이 높음에도 '중대한 경영상 어려움'을 인정하지 않다"며 "2013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취지에 따른 것인지 의문"라고 지적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이번 판결로 기업들이 예측치 못한 추가 비용까지 부담하게 돼, 산업경쟁력 약화로 이어지지 않을까 우려스럽다"며 "기업들이 투자와 일자리 창출에 매진할 수 있도록 향후에는 치열한 글로벌 경쟁, 투자애로 등의 요인도 종합적으로 고려해주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한국무역협회는 "최근 통상임금의 적용을 둘러싸고 115개사 이상 기업이 소송에 휘말려 있는 시점에 이번 판결이 업계에 미칠 파장은 심각하다"며 "국내 수출의 13.4%, 고용의 11.8%를 담당하는 자동차 산업의 위기는 국가 경제의 위기로 직결될 수 있다"고 밝혔다.
중소기업중앙회도 "이번 법원의 판결로 완성차업체에서 늘어난 인건비 부담을 협력업체로 전가하면, 중소·중견 부품업체와의 임금격차 확대로 대·중소기업 근로자간 임금 양극화가 더욱 심화될 수 있다"면서 우려를 나타냈다. 이어 "특히 자동차부품산업의 근간 업종인 도금, 도장, 열처리 등 뿌리산업 업계에 큰 타격이 예상된다"고 덧붙였다.
기업이 피부로 느끼는 긴장감은 더하다. 대기업 한 관계자는 "통상임금 소송이 진행될 때마다 오락가락 판결이 계속되다 보니 기업으로서는 이에 대한 리스크가 매우 크다"면서 "현재 소송중인 기업은 물론 경제계 전반에 큰 부담이 되는 판결"이라고 불만을 토로했다.
이에 재계는 정부와 국회에 통상임금의 개념과 범위 등을 정해줄 것을 요청했다.
대한상의는 "향후 노사간 소모적 분쟁을 방지하기 위해 통상임금의 개념과 범위를 명확히 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경련도 "과도한 인건비 추가 부담 등 기업 경영의 불확실성을 줄이기 위해 각계각층의 의견을 폭넓게 수렴해 통상임금 정의 규정을 입법화하고, 신의칙 세부지침을 조속히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