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1일(현지 시각) 미국 연방통신위원회(FCC)의 아지트 파이 위원장이 망 사업자가 망을 이용하는 콘텐츠나 서비스를 차별해서는 안된다는 '망 중립성' 원칙을 폐기할 계획을 밝혔다. 망 중립성 준수를 강조한 오바마 정부와는 다른 행보를 보인 셈이다.
망 중립성 폐지안은 내달 14일 위원회에서 5명의 위원이 투표하게 된다. 위원은 공화당 3명, 민주당 2명으로 구성돼 3대2로 무난하게 승인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다. 이처럼 미국의 정책 전환 기조가 보이면서 국내 통신·인터넷 시장도 들썩이고 있다.
망 중립성(Net Neutality)은 네트워크 사업자(ISP·통신사)가 구글, 넷플릭스, 페이스북 등과 같은 모든 콘텐츠 사업자에 망을 차별 없이 개방한다는 내용이 골자다.
망 중립성 폐지안은 망 제공자인 통신사업자에겐 호재지만, 인터넷 사업자에게는 부정적이다. 당장 미국 이통사 AT&T 등 망 사업자는 반기고, 구글 등 인터넷 사업자는 강력 반발에 나섰다. 통신 사업자의 경우 망 사용료 수익을 확대할 수 있지만 구글, 넷플릭스 등 인터넷 사업자는 막대한 비용 부담이 전가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넷플릭스의 동영상 서비스로 데이터 양이 증가하면, 넷플릭스에 비용을 더 분담시킬 수 있게 된다.
국내로 눈을 돌리면 SK텔레콤, KT, LG유플러스 등 이동통신 3사와 네이버, 카카오 등 인터넷 기업이 영향을 받을 수 있고, 인터넷·콘텐츠를 이용하는 일반 소비자와도 맞닿아 있다.
망 중립성 논쟁은 국내에서도 해묵은 문제다. 글로벌 추세에 맞춰 국내에서는 지난 2011년 가이드 형태의 망 중립성 지침이 시행됐다. 본격적으로 국내에서 망 중립성 논쟁이 불거진 것은 2012년 카카오톡의 모바일 인터넷전화(mVoIP) '보이스톡' 출시다. 이동통신 3사와 카카오 사이의 mVoIP 제한 논란 이후 KT의 스마트TV 접속 제한 사건 등으로 주목받은 바 있다. 최근에는 지난 5월 SK브로드밴드 가입자들의 페이스북 접속 장애가 발생하며 망 중립성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페이스북이 캐시 서버 설치 관련, 비용 분담 요구를 거절하며 통신망 협상이 결렬된 이후다.
국내 이동통신 업체들은 데이터의 폭발적 증가량에 발맞춰 통신망 투자 등을 위해 인터넷 업체들도 분담을 같이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증권가는 망 중립성 완화 기조가 국내 이동통신사에게 호재로 작용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하이투자증권은 보고서를 통해 "통신사는 사물인터넷, 인공지능, 빅데이터 등 4차 산업혁명기의 도래와 합리적인 트래픽 관리를 명분으로 인터넷 사업자와의 협상력 측면에서 우위를 차지할 수 있는 가능성이 존재한다"고 전망했다.
한국투자증권 또한 "현재 국내외에서 콘텐츠 업체가 데이터 트래픽 비용을 지불하는 제로 레이팅이 확산되고 있다"며 "구제가 완화되면 속도가 빠르고 우수한 통화 품질이 보장되는 프리미엄 차등 서비스가 출시될 전망"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나 인터넷 업계는 망 중립성 원칙 폐지에 난색을 표하는 모양새다. 인터넷 업계 관계자는 "망중립성이 훼손될 경우 사용자들의 인터넷 콘텐츠 선택권과 혁신적인 서비스의 등장이 제한될 수 있다"라며 "'망 사업'은 국가의 기간산업인 만큼 국가경쟁력 관점에서 망 사업에 대한 국가의 장기적인 안목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망 중립성 폐지로 스타트업이나 중소형 콘텐츠 사업자들이 망 사용료를 부담할 수 있는 여력이 제한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다만, 당장 미국의 망 중립성 폐지가 국내에 끼치는 영향은 제한적일 것으로 분석된다. 트럼프 정부와 달리 문재인 정부는 망 중립성을 강화하겠다는 기조를 보여 왔기 때문이다. 실제 정부는 지난 8월 망 중립성 원칙을 강화하는 '전기통신사업자 간 불합리하거나 차별적인 조건·제한 부과의 부당한 행위 세부 기준'을 제정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