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성 방통위원장(오른쪽)이 케빈 마틴 페이스북 부사장과 면담 이후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 방송통신위원회
글로벌 IT 사업자 페이스북이 방송통신위원회를 찾아 세금을 납부하고 망 이용료도 협상도 적극적으로 나서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케빈 마틴 페이스북 수석부사장은 10일 오후 경기도 과천에 위치한 방통위를 찾아 이효성 방통위원장과 면담하고 이같은 의견을 나눴다. 이번 면담은 페이스북이 먼저 요청해 이뤄졌다.
이 자리에서 이효성 위원장은 "국가별로 매출을 신고하고 세금을 납부하겠다는 페이스북의 최근 결정을 환영한다"라며 "트래픽사용량에 상응하는 망 이용료를 부담하는 것이 공평하고 국민 정서에도 부합할 것"이라고 그간 제기된 국내 사업자와의 역차별 문제에 대한 개선을 요구했다.
이에 마틴 부사장은 "현지에 수익을 신고하고 세금을 납부하기로 한 25개 국가에 한국도 포함된 만큼 앞으로도 한국의 조세법을 성실하게 준수하겠다"고 답했다.
케빈 마틴 부사장은 조지 워커 부시 행정부가 출범한 2001년에 우리나라의 방통위에 해당하는 미국 연방통신위원회(FCC) 위원으로 임명됐다. 부시 행정부 2기에는 FCC 위원장을 지냈으며, 지난 2015년에 페이스북에 영입됐다. 지난 2016년 당시 최성준 방통위원장과 면담하기도 해 한국과의 인연도 있다.
페이스북은 지난해부터 SK브로드밴드 등 국내 특정 통신사업자의 접속경로를 임의로 변경해 페이스북 접속을 의도적으로 차단했다는 논란이 이어져왔다. 이 논란은 국내 통신사업자의 데이터센터(IDC)에 페이스북의 캐시서버 구축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비용 부담을 놓고 합의점을 찾지 못하면서 불거졌다.
캐시(Cache)서버는 이용자가 자주 찾는 콘텐츠를 해외 서버에서 가져올 필요 없이 국내 인터넷데이터센터에 미리 저장해두는 전산 설비다. 페이스북은 이용자가 자주 사용하는 데이터를 저장해놓는 캐시서버를 KT에만 두고 있어 상대적으로 SK브로드밴드 이용자는 속도 저하를 겪어 온 것으로 알려졌다. SK브로드밴드도 IDC에서 캐시서버 구축을 추진했지만, 페이스북이 설치비용을 부담할 수 없다고 해 협상이 결렬된 바 있다.
이날 마틴 부사장은 국내 인터넷서비스제공(ISP) 사업자와도 긴밀히 협력하고, 망 이용료에 대해서도 상호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결론이 나도록 노력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김재영 방통위 이용자정책국장은 이날 면담 이후 브리핑을 열고 "망 이용료와 관련해 페이스북 측은 앞으로 네트워크 관련 담당자들이 국내 ISP 사업자와 화상회의나 한국 방문 등을 통해 적극적으로 협상을 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며 "국내 ICT 생태계 상생을 위해 올해 1·4분기 중 판교에 500여 스타트업을 집중 교육 하는 등 국내 스타트업 지원을 위한 '이노베이션 랩'을 오픈한다"고 말했다.
구글, 애플 등 글로벌 IT 사업자들이 국내 사업자 역차별 이슈에 무반응으로 일관하는 것과 달리 페이스북이 먼저 적극적으로 정부와 대화에 나선 것은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 특성 상 회사 브랜드 이미지와 이용자의 반응이 중요하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페이스북 이외에 인스타그램 등 새로운 경쟁 SNS들이 출몰해 이용자를 빼앗기는 상황도 무시할 수 없다.
방통위 고위 관계자는 "국내 이용자가 1800만명에 달하는 페북은 콘텐츠 등의 서비스가 비교적 인터렉티브(상호작용)하는 형식이기 때문에 브랜드 가치 등 이용자들의 평가가 중요하다"며 "반면 구글은 구글의 플랫폼과 기술을 받아들이는 수동적인 이용자가 많기 때문에 페북과는 대응이 다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구글, 애플 등의 글로벌 IT 사업자 또한 국내 사업자·이용자 역차별 문제가 심화되고 국내 이용자들의 불매운동 등 커다란 비판에 직면하게 되면, 협상 테이블에 앉을 가능성이 높다. 페북이 방통위를 방문해 역차별 이슈 문제 해결을 위한 의지를 보이며 물꼬를 튼 것도 무시할 수는 없다.
김재영 국장은 "페이스북의 전향적인 자세가 다른 글로벌 사업자에 전파되고 한국의 상황을 이해해 역차별 해소 문제가 긍정적으로 해소되길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